[월요논단]공과대학과 `기업고객 만족`

지난 몇 년 사이 많은 사람들이 걱정했던 소위 ‘이공계 기피 현상’은 최근 대입 경향을 볼 때 서서히 완화되고 있는 듯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양적으로 지원자만 늘었다는 겉모습일 뿐, 문제의 핵심인 우수 인재 확보라는 면에서는 여전히 미제의 숙제가 남아 있다고 본다.

 이공계 기피는 선진국에서도 이미 한 차례 겪은 바 있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너무나도 급격하게 이공계 지원자 수가 격감하는 양적인 문제와 우수한 학생들이 의대·치대·약대 등 소위 ‘사’자 직업에 대한 매력 때문에 이공계를 이탈하는 질적인 문제 등 두 가지를 안고 있다. “한 사람의 유능한 엔지니어가 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말처럼 창의적인 인재를 확보를 확보하는 것이야 말로 우리나라가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로 조기에 진입할 수 열쇠라고 하겠다.

 인재양성의 책임은 대학에 있다. 학생의 90% 이상이 궁극적으로는 기업에 취업하고 있으므로 대학의 고객은 곧 기업이다. 그러나 대학 교육에 대한 기업의 만족도는 높지 않다. 산업 현장에 필요한 교육을 대학에서 제공하지 못하고 있고 교과과정도 기업의 수요와 괴리되어 있다는 게 기업들의 불만이다. 기업에서 요구하는 교육을 위해서는 교육 현장에서 교수와 학생들이 진지하게 토론하고 설계 프로젝트와 실험실습을 심도 있게 하는 교육여건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최근 우리나라 대학의 연구역량은 급속도로 향상되어 가장 객관적인 지표라는 논문수 등은 선진국 수준을 상회하고 있다. 그러나 대학 교육은 연구력 향상에 상응하는 변화를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선 대학의 교수 확보율만 보더라도 교수-학생 비율이 중·고등학교보다도 높을 정도로 열악하기 짝이 없다. 이런 여건에서 기업에서 요구하는 창의적인 설계능력 및 실험실습 등을 강화한다는 것은 무리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공과대학 졸업생 수는 작년도 기준으로 6만7750명이다. 미국의 6만5113명, 프랑스·독일·영국 등의 3만여명에 비해 절대적인 수적 우위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우리 경제규모와 기업의 수요 등을 감안하면 너무 많다. 이 같은 졸업 인력 과잉은 공과대학뿐만 아니라 대학 전반에 걸쳐 적용되는 현상이어서 청년실업 증가와 대학 교육의 왜곡 등 여러 가지 심각한 문제를 노출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타개하기 위한 근본 대책으로는 경제사회 여건에 알맞게 대학의 정원을 과감하게 감축·재조정하는 일일 것이다. 공과대학의 경우 교육투자비가 일반대학에 비해서 상당히 높아 현행처럼 양적 위주의 제도로는 경쟁력을 효율적으로 확보하기 어렵다. 인력의 질을 향상하기 위해서라도 정원조정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아울러 공학교육의 전문성을 감안할 때 전공 분야별로 적절한 인원배정이 되었는지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대학정원이 사회수요보다는 대학 내부적인 요인으로 왜곡되는 현상이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과 기업은 연계 강화를 위해 기존의 형식적으로 이루어지는 산·학협동을 좀더 알차고 구체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공과대학의 교과과정이 고객인 기업과 학생의 의견보다는 교육공급자인 교수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개선할 여지가 있다고 본다. 따라서 전공 분야별로 관련 기업들로 협의체를 구성하여 산업계에서 필요한 과목을 구체적으로 대학에 요구할 필요가 있다. 또한 기업이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현행의 영어·상식보다는 기업에서 원하는 전공지식을 강조한다면 대학 교육의 내용도 자연히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창의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공학도를 양성하는 일은 대학 정원조정·강의평가·교과과정 개편 등 대학내부의 개혁과 정부와 기업의 구체적인 대학교육의 변화 방안이 함께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가능하다고 본다.

 ◆ 한민구 서울대 공대학장 mkh@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