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칼럼]남북 애니메이션 합작 당위성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다소 성급한 이들은 애니메이션부문에서 남북 간 교류가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상회담 직후 방북한 남한의 언론사 사장단과 만나 애니메이션 교류에 대해 매우 구체적인 언사로 긍정적 입장을 피력한 것이 이러한 전망의 주요 논거였다. 그러나 남북 애니메이션 교류는 당초의 예상과는 달리 크게 엇나갔다. 몇몇 애니메이션업체가 나서서 북한 측과 물밑 교섭을 벌였지만 수면 위로 고개를 내민 합작사업은 다섯 손가락에도 꼽히지 않았다. 현재까지 진행중인 사업은 더욱 적다.

 남북 간 애니메이션 교류는 다른 분야에 못지않게 민족 통일로 가는 길에서 일구어 내야 할 긴요한 과제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애니메이션이 가지는 대중성과 비정치성은 아주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남북 간 이질감을 해소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애니메이션만큼 어린이에게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매개체도 드물거니와, 어린이가 예민한 감수성으로 받아들인 애니메이션의 영향력은 성인이 돼서까지도 일생을 관통해 흐르는 정신적 자양분이 될 것이 분명하다. 또 애니메이션은 남북 모두 비정치적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 북한이 우려하는 자본주의의 황색바람이나 남한이 기피하는 공산주의의 빨강 물이 작용할 근거가 희박하다. 여기에 애니메이션의 예술성과 상업성이 더해지면 양방에 무시 못할 경제적 가치가 창출될 것이다.

 이미 애니메이션은 문화산업의 대표적 장르로 위상이 강화됐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산업에 미치는 파급력도 대단히 커졌다. 따라서 애니메이션 교류는 남북을 가깝게 이어주는 가교로서의 의의를 가짐과 동시에 경제적으로 상생하는 데 도움이 되는 산업이라 할 수 있다.

 최근 남한은 해외 OEM 작품 제작분야에서 북한과의 협력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 남한은 많은 OEM 물량을 중국 등 저임금 국가에 빼앗기고 있는 형편이다. 하청물량 의존도가 큰 국내 업계의 형편에서 심화되는 하청물량 감소는 곧바로 시장 침체로 이어진다.

 중국은 상하이와 선양·창춘을 중심으로 미국·유럽 등의 작품을 대량 수주하고 있다. 2001년에는 TV시리즈물 기준 500편 규모의 외국 OEM물을 제작했으며, 근년 들어서는 그 제작량이 더욱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아예 남한이 수주한 OEM 물량까지 중국에 재하청되는 실정에 이르렀다. 남한은 동화 및 채색 공정 일감의 상당량을 중국에 발주한다.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제작비가 절약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보다 더 저렴한 인건비구조를 지닌 북한의 인력과 남한의 마케팅능력이 결합된다면 그 효과가 대단히 클 것이다.

 2002년 남한이 해외 OEM물을 수주해 얻은 매출액(약 2000억원)과 이를 제작하는 데 동원된 종사원수(약 4000명)를 근거로 북한과의 합작시 얻을 수 있는 효과를 따져보면, 북한 종사원 약 1000명을 합작사업에 동원했을 때 (산술적 계산이지만) 500억원 가량의 매출액 증가가 기대된다. 현재 북한의 4·26아동영화촬영소가 종사원 1000명을 동원해서 얻을 수 있는 매출액을 약 600만달러(72억원)라고 유추할 때 남한과 합작시에는 이보다 약 7배의 시너지효과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합작시에 강화된 시장 경쟁력까지 여기에 더하면 그 효과는 더욱 커질 것이다.

 평양에서 오랫동안 일한 적이 있는 유럽의 한 대북사업 전문기업인은 올해 초 서울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애니메이션을 대북유망사업의 첫 손가락에 꼽은 바 있다. 국내 애니메이션업계는 대북사업의 문전에서 너무 오랫동안 망설여 왔다. 이젠 득보다 실이 많은 지루한 망설임을 버리고 대북사업에 눈을 돌려야 한다. 그것이 현재 국내 업계가 처한 난관을 돌파하는 원동력이 되리라고 믿는다.

 <이정 민족네트워크 사장 4lee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