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왕조에서나 왕권(王權)과 신권(臣權) 다툼은 치열했다. 조선 왕조 초기, 태종과 정도전이 대표적이다.
정도전이 표방한 왕도정치도 곧 신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말과 다름없다. 반면 태종은 강력한 왕의 권위를 고집했다. 결국 정도전의 꿈은 물거품이 됐다. 태종은 역대 조선 왕조를 통틀어 가장 강력한 왕권을 행사했다.
왕권이 강력하면 나라도 힘이 있다. 문제는 왕이 그릇된 생각을 할 때다. 신권은 바로 이를 바로잡는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의 대통령은 거의 왕에 준하는 권력을 행사했다. 특히 박정희 정권은 여느 왕 못지 않은 강력한 힘을 누렸다. 그 결과 나라를 가난에서 벗어나게 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 앞에선 거의 모든 정치인과 관료가 숨을 죽였다. 일일이 지시를 받아야 했다.
지나친 권력욕은 결국 비극적인 종말로 이어졌다. 그가 신권을 어느 정도 보장했더라면 이런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청와대가 국무총리가 일상적 국정운영을 책임지는 이른바 ‘분권형 국정운영’을 강화한다고 한다. 총리에게 실질적인 각료 제청권을 줄 방침이다. 아예 총리 선출권을 당에 준다는 언급도 있었다. 경제, 통일외교안보, 사회문화, 과학기술, 교육인적자원개발 등 5개 분야별 책임장관제도 도입했다.
건국 이래 이처럼 권력을 양보하겠다는 대통령은 현 노무현 대통령이 처음일 듯싶다. 달리 말하면 신권이 이렇게 커진 것도 처음이다.
하지만 상당수 국민은 너무 빠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과 같은 강력한 대통령을 원하는 사람도 제법 있는 실정이다. 변화하는 관료 체계도 아직 안정되지 못했다. 상당수 정부 부처를 보면 어느 장관이 오느냐에 따라 마구 바뀐다.
그렇다고 해서 마땅히 가야 할 길을 안 갈 수는 없다. 따라서 총리와 책임장관들의 ‘책임’이 크다. 커진 권한만큼이나 책임있게, 소신있게 일을 추진해야 국민에게 욕을 먹지 않는다. 더욱이 온 나라가 경제살리기에 매달리는 시점이다.
‘뉴딜’이라 부르든 ‘종합경기대책’이라 하든 총리와 책임장관들이 확실한 것을 내놓아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모처럼 맞은 ‘강력한 신권’시대가 주는 역사적 의미가 아닐까.
신화수기자@전자신문, hss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