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해외 나들이’ 유감

 “ …저들은 참으로 머리를 깎고(변발) 옷깃을 왼쪽으로 하는 오랑캐들이다. …우리를 저들에다 비교하면 한 치도 나은 것이 없다. 그런데도 오직 한 줌의 상투만 가지고 스스로 천하에 뽐내면서 ‘지금의 중국은 중국이 아니다’라 말한다. 산천에선 비린내와 누린내가 나고 인민은 개나 양 같은 무리라 헐뜯고 야만족의 말을 쓴다고 모함한다. 중국 고유의 좋은 법이나 훌륭한 제도까지도 같이 몰아넣어 배척한다. 그렇다면 어떤 나라를 본떠서 행할 것인가?”

 인용한 글은 연암 박지원이 박제가의 <북학의(北學儀)>라는 책에 쓴 서문의 일부다. 문체반정의 타깃이었던 개혁주의자 연암의 이 글은 실리는 도외시하고 소중화주의(小中華主義)에 젖어 있는 당시 지식층을 향한 일갈이면서, 사회의식 개혁의 열망을 느끼게 해 준다. 명(明)이 망하고 청(淸)이 들어선 지 오랜 세월이 지났건만 조선 사회는 누루하치가 세운 청나라를 인정하지 않는 이율배반적인 심리가 만연되어 있었다. 적어도 심정적으로 조선은 청을 나라로 인정한 적이 한 번도 없는 것이다. 강희·옹정·건륭제가 제 아무리 뛰어난 황제라 해도 만주족 오랑캐니까 왼고개를 틀 수밖에 없었다. 하여 만주족의 문물에서 우리가 배울 것이란 아무도 없다는 어처구니없는 논리가 성립이 되었는데, 연암은 이런 심리의 원인으로 우리 민족의 ‘편협성’에 손가락을 들이 댔다. 실사구시 학문이 성행했던 당시 사회는 다양성을 가지고 근대적인 사회체제로 변이하는 모습을 띠기도 했지만 왕권과 세도정치의 폐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그런 까닭에 실학자들이 부르짖은 개혁이라는 말도 결국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버렸다. 외국의 유명한 학자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인류 역사 이래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가 ‘개혁(Revolution)’이라고 한다. 사회의 습벽이 얼마나 완강했으면 개혁이라는 말이 수 천년 반복타령으로 내려오고 있을까. 석가와 예수와 공자가 말한 것도 알고 보면 사회의 의식 개혁인 것임을 볼 때 인간이란 동물은 태생적으로 개혁의 대상인 동시에 애당초 영원히 개혁이 불가능한 물건인지도 모를 일이다.

 중국 투자가 활기를 띠면서 중국 나들이가 안방처럼 쉬운 요즘이다. 병자호란 직후 조선인 노예시장이 들어섰던 선양에도 우리 기업의 상당수가 진출해 있다. 역사의 아이러니일까, 그 옛날 노예 장터일지도 모를 그 곳에서 우리는 지금 첨단 전자제품 매장을 열고 중국인들에게 물건을 되팔고 있다. 중국과의 교류 활성화는 세상의 넓음을 보고 사고의 지평을 넓힌다는 측면에서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 생각한다. 연암이 살던 시대에 중국으로 가려면 사신을 수행하는 무리에 끼어 만주 책문에서 삼엄한 몸수색을 당한 후 목숨을 걸고 원행을 다녀와야만 했다. 개중에는 역관들을 통해 돈푼이나 쥐려는 장사치도 있었지만 연암에게서 보듯, 당시 선비들은 원족을 통해 선진 문물과 제도를 습득하려고 애썼음을 알 수 있다.

 요즘 우리의 해외 씀씀이를 보면 입이 씁쓸해진다. 뭔가 보고 배우기는커녕 자기 과시를 위해 돈을 물 쓰듯 하는 소수 졸부 근성의 한심한 모습이다. 경제 성장률이 바닥을 헤매고 불황이 뼛속까지 파고들어 고황이 되었는데 해외 관광, 도박, 골프는 여전하다고 한다. 지금 과연 이래도 될 만큼 우리의 사정이 여유롭고 한가한가. 관광을 즐기러 힘들게 번 달러를 쓰기 위해 작심하고 해외로 떠나는 사람들을 보면 우리 경제엔 문제가 없다는 정부의 말이 사실인 것처럼 보인다. 중국이나 베트남, 동남아를 다녀온 지도층 인사(?)들도 아오자이나 치파오를 입은 여인들의 몸매와 술자리에서의 무용담에 대해서는 장황설을 늘어놓지만 푸둥의 상전벽해나 이들 국가의 숨겨진 저력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꺼내지 않는다. 봐야할 것은 안 보고 향락에만 눈이 먼 우리에게 중국은 아직도 연암의 말대로 만주족의 후예들이 세운 나라로만 보이는 모양이다.

 서용범논설위원@전자신문, yb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