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하이닉스 특허침해 피소

일본업체들의 공격적인 특허공세...업계 긴장

일본의 도시바가 하이닉스를 상대로 대용량 플래시메모리 회로구조 특허 침해를 들어 도쿄 지방법원과 미 댈러스 연방지방법원에 각각 제소했다고 한다. 하이닉스는 도시바의 제소에 대해 “1년 이상 끌어온 특허협상에서 유리한 입장에 서겠다는 전술에 불과하다”며 의미를 축소하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이번 소송이 한국 업체를 상대로 한 일본 업체들의 기술방어를 위한 공격적인 특허공세와 맥락을 같이한다는 점에서 긴장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최근 양측의 협상으로 원만한 타결을 본 후지쯔와 삼성SDI의 플라즈마디스플레이패널(PDP) 특허분쟁과 이달 초 마쓰시타가 LG전자를 겨냥해 제기한 PDP 특허 침해 소송을 보면 일본이 전방위 특허 공세를 펴는 의도가 어디에 있는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무차별적인 일본의 특허공세 이면에는 급부상하는 경쟁국 업체들에 추월당하지 말아야겠다는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는 점에서 이에 맞게 대응해야 할 사안이다. 실제 과거에는 연간 2∼3건에 불과했던 일본 기업들의 타사에 대한 수입관세 금지 신청이 최근 1년 새 20건이 넘는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일본업계의 움직임은 PDP·백색LED·유기발광다이오드(OLED)·GSM단말기·반도체 등 첨단 기술분야에 집중되어 있다.

 한때 세계 D램 시장을 선도했다가 후발업체인 삼성전자에 밀려난 쓰라린 경험이 있는 일본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자기 방어 전략일 수도 있다. 기업뿐만 아니라 일본 정부도 지적재산권 보호를 위한 각종 법제도 정비에 나서는 등 대대적인 엄호사격을 하고 있다. 자국의 기술 유출을 막아 해외 경쟁업체들에 기술 우위의 빌미를 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학계와 언론까지 가세, 일본의 특허 방어 전략은 가히 국가 차원의 프로젝트라는 느낌이 든다. 우리가 하이닉스의 피소 사건도 단순한 로열티 협상용이 아닌 ‘견제용’이라고 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번에 도시바가 특허침해를 제기한 플래시메모리는 최근 MP3플레이어·디지털카메라·휴대폰 등 휴대형 저장장치가 각광을 받으면서 급성장하고 있는 유망 품목으로 삼성전자가 47.3%, 도시바가 36.5%를 점유하며 세계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소송 공세에 휘말린 하이닉스의 경우, 낸드형 플래시메모리 매출은 총 매출의 6%를 차지할 정도로 낮은 편이다. 세계시장 점유율이 2.4%인 4∼5위에 불과한 하이닉스를 겨냥해 도시바가 특허공세를 펴고 있는 것은 또 하나의 경쟁자를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전략적인 측면이 강하다고 본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삼성-도시바 양강 구도에 하이닉스가 진출함으로 해서 가격이 40% 이상 급락했다”고 보도한 것만 봐도 저의가 무엇인가를 짐작할 수 있다. 일부에서는 이번 사건이 하이닉스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할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지만 하이닉스가 올해 세계시장 점유율 4%를 목표로 하는 전략적 분야인 만큼 그렇게 가볍게 볼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소송의 결과에 따라 하이닉스가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을 수 있는데다가 미국 내 D램 소송까지 확산될 경우 파장이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핵심기술을 빌려 쓰다 보면 자칫 특허분쟁에 휘말릴 수도 있다. 따라서 사전에 철저한 특허대응책을 마련해야 분쟁에 휘말리지 않을 것이다. 사후약방문격으로 분쟁을 해결하려 하면 기업 이미지 실추는 물론 기업 활동 장애 등 눈에 보이지 않는 피해가 적지 않다. 모든 기술을 자체 개발해서 쓸 수는 없겠지만 핵심 원천기술 개발에 지속적인 투자를 확대해 자체 기술력을 확보할 때 특허침해 분쟁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모든 기업들이 유념해야 한다. 이번 사건이 최근 5분기 연속 흑자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하이닉스의 재기 행보에 걸림돌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