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부품업체가 어렵게 개발한 핵심 부품들이 국내 통신업체의 외면으로 고사위기에 내몰렸다고 한다. 부품업체의 입장에서는 가슴을 칠 일이다. 그것도 국산 부품의 질이 외국 부품에 비해 떨어지거나 성능에 문제가 있다면 이해할 수 있겠지만 기존의 관행에 젖어 호환성 등을 이유로 사용을 기피한다면 시정해야 할 일이다. 이 같은 일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국내 업체들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 인력과 연구비를 투입해 힘들게 개발한 국산 부품은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고 부품업체 또한 존립의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실제 성능에 이상이 없어 국내 통신업체에 광전송 장비공급을 낙관했던 한 벤처기업은 최종 단계에서 탈락했다고 한다. 또 총 70억원을 들여 정부 개발사업을 진행해 칩세트 개발에 성공한 모 반도체 설계업체도 기존 장비와 호환이 안 된다는 이유로 국내 장비업체에 대한 칩 공급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국산부품 대신 사용키로 한 외산 칩도 기존장비와 호환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라고 한다.
이 같은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내 통신업체들은 국산 부품이 벤치마크테스트(BMT)에서는 성능이 우수한 것으로 나타나도 시장에서 검증되지 않았다거나 기존 장비와 호환이 안 된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도입을 기피하는 사례가 없지 않았다. 또 관행적으로 사용한 부품이 아닌 국산 부품을 채택했을 경우 만에 하나 문제가 발생하면 그 책임을 지기 싫어하는 심리가 적지 않게 작용해 왔다. 그러나 이 같은 관행과 의식이 변하지 않으면 부품국산화는 이른 시일 안에 달성할 수 없다. 이는 곧 우리 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 오게 될 것이다.
지금 산업경쟁력의 핵심은 부품과 소재산업의 국산화다. 부품이나 소재산업의 경쟁력이 높아지지 못하면 기술산업국으로 도약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부품산업은 규모의 영세성과 수요 기업과의 종속적 거래관행까지 겹쳐 독자적인 기술개발이 쉽지 않다. 또 전문인력 양성이나 자금 마련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런데다 우리는 선진국에 비해 설계기술이나 개발기술·신기술·응용기술 등에서 크게 뒤져 있다. 우리의 경우 종업원 100인 이상 기업 가운데 매출액 대비 기술개발투자비율이 2% 미만인 업체가 전체의 60%를 넘고 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부품을 개발해도 수요 기업들의 인식부족과 사용기피로 시장진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품업체들이 적지 않다. 수요기업들의 국산 부품 사용 기피는 부품 자립의 길을 더디게 하고 나아가 부품역조를 심화시키는 원인이다. 특히 한일 간 부품소재 무역역조는 갈수록 심해 지고 있다. 지난해 우리의 대일본 부품·소재수출은 77억달러였지만 수입은 216억달러로 139억달러의 무역 적자를 기록했다. 만약 국산 부품을 국내 업체들이 최대한 사용했더라면 이 같은 대일 무역역조는 그만큼 개선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정부도 부품과 소재산업 육성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수요기업들이 국산부품 사용을 기피한다면 정책의 성과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국산 부품육성 차원에서 성능과 가격에서 별 차이가 없다면 국산부품을 우선적으로 국내업체들이 구매해야 서로 성장할 수 있다. 정부도 통상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공기업 들에서 우선적으로 국산부품을 구매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국내 수요기업에 부품을 공급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해외에 대량 부품수출을 할 수 있겠는가. 이제 국산제품에 대한 수요기업의 잘못된 인식을 버려야 한다. 아울러 국내 부품업체들도 성능과 품질·가격 면에서 외산보다 앞선 제품 개발과 생산에 더욱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