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정보통신 규제정책의 새 틀

그동안 정보통신은 각각의 서비스마다 그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가 서비스 제공에 가장 적합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이를 이용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로 발전해 왔다. 즉 유선전화서비스는 유선전화 네트워크를 이용해 유선전화사업자가, 데이터통신 서비스는 별개의 데이터통신 네트워크를 이용해 데이터통신사업자가, 이동전화 서비스는 또 다른 이동전화 네트워크를 구축한 이동전화사업자가 제공하도록 한 것 등이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정보통신산업 부문에서 시장 진입, 이용 조건, 요금, 특정사업자의 시장지배 등에 대한 규제제도의 틀도 이와 같이 서비스와 그 서비스 제공에 이용되는 네트워크가 1대1로 결합돼 있다는 전제에서 서비스 또는 네트워크별로 구분돼 짜여 있다.

 근래에 들어 정보통신기술의 눈부신 발전으로 정보통신 네트워크·서비스·사업자 등 모든 분야에서 소위 ‘융합현상’이라는 대변혁이 일어나고 있다. 음성통신과 데이터통신이 융합된 형태의 통신서비스, 유선통신과 무선통신이 융합된 서비스, 나아가서는 통신서비스와 방송서비스가 융합된 서비스가 확산되는 추세에 있다. 이미 인터넷이라는 네트워크를 통한 음성통신, 각종 데이터통신, 방송 등이 융합된 형태의 다양한 새로운 서비스가 종전의 유무선전화사업자, 데이터통신사업자 또는 방송사업자 등에 의해 경쟁적으로 제공되고 있다. 이제 이들 융합서비스가 어떤 네트워크를 이용해 제공되는가를 가리는 것은 의미가 없게 되었다. 앞으로 우리나라 정보통신의 근간을 이룰 광대역통합망(BcN)도 이 같은 정보통신 대변혁의 성숙을 전제로 추진되고 있다.

 이와 같이 기술 발전과 시장이 변화의 급류를 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와 관련된 규제제도는 아직도 옛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것은 비단 우리뿐만 아니라 미국·유럽을 포함한 세계 공통의 현상이다. 시장에서는 종전의 틀에 맞지 않는 현상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지만 새로운 규제정책의 원칙이 없다 보니 그때 그때 임기응변적이고 예외적 규제를 만들어 적용하고 있다.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이 없는 까닭에 시장의 불안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규제제도의 비일관성과 불확실성은 기술개발과 신규투자 의욕을 가로막고 있다. 아마도 작금의 세계적인 정보통신시장 침체의 원인도 일부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오늘의 기술과 시장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고, 나아가서는 앞으로의 정보통신 발전을 선도할 수 있는 새로운 규제정책의 틀이 절실히 요구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최근 정보통신 규제의 새로운 틀을 마련하고자 하는 연구와 논의가 미국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앞으로 모든 정보 통신서비스가 인터넷을 중심으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예상에 착안해 인터넷이 갖는 계층적 구조의 개념을 차세대 규제제도의 기본개념에 적용함으로써 인터넷 중심의 정보통신시대에 적합한 규제의 틀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 논의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예를 들면 규제의 대상을 ▷접속(access)서비스 ▷전달(transport)서비스 ▷응용(application)서비스 ▷콘텐트(content)서비스의 4개 계층으로 구분하고, 계층별로 서비스 제공자들을 시장 지배력에 따라 적절하고 일관성 있는 규제한다는 것이다. 아직 개념정리 단계이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올바른 방향이라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우리도 ‘IT839 전략’ 등 다음 세대의 정보통신 강국을 지향해 총력을 경주하고 있는 차제에 혁신적인 기술 개발과 사업자들의 투자의욕 등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새로운 틀의 규제제도를 남들보다 앞서 마련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서둘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상현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초빙교수 shkyong@gsm.kaist.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