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국회의원 33명이 발의한 ‘산업기술유출방지및보호지원에관한법률’ 제정안에 대해 과학기술인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고 한다.
산업자원부가 지난달 이와 비슷한 법안을 입법 예고할 때도 회원이 1만3000여명에 달하는 한국과학기술인연합을 중심으로 과학기술인들이 개인의 권리 침해 등 여러 가지의 독소 조항을 이유로 심하게 반발한 것을 감안하면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하지만 기술개발 주체이자 첨단기술 관리자이기도 한 과학기술인들이 이처럼 지속적이면서 공개적으로 반대 의견을 밝힐 정도로 반발하는 것은 분명 법안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아무리 법 제정 취지가 옳다고 하더라도 연구개발을 주도하는 과학기술인에게 불이익을 준다면 오히려 기술 개발 분위기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어떤 식으로든 보완·수정이 돼야 한다고 본다.
우리는 그러나 이번 사태가 부처 간 주도권 잡기 싸움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하는 의문을 지울 수가 없다. 이번에 의원 입법으로 발의된 기술유출 방지 법안은 당초 산자부가 입법 예고했다가 과학기술혁신본부에 의해 일시적으로 보류된 법안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그렇다. 현재 이 법안은 과학기술혁신본부의 주도로 관련 부처의 의견을 수렴하는 등 보완·수정 작업이 이루어지는 와중이기 때문에 의원입법 배경에 의구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이 기우이길 바랄 뿐이다.
첨단기술의 해외유출 피해는 날로 심각해지는 상황이고 특히 기술유출 대상이 반도체·휴대폰·TFT LCD 등 우리의 우위 분야여서 소홀히 대처하다간 국가 경제에 치명적 손실을 입게 될 수밖에 없다. 물론 현재 ‘부정경쟁방지및영업비밀보호에관한법률’ 등 기술유출에 대한 처벌법이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중국 등 경쟁국의 적극적인 기업매수와 첨단 기술기업들의 앞다툰 해외 진출로 인해 기술이 새어 나가기도 하는 실정이다. 이제 해외 기술유출이 더는 개별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대응책을 신속히 마련해야 하는 문제인 것임에 틀림없다.
때문에 우리가 기술유출방지법안 제정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술 유출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특히 산업스파이에 대해서는 이를 퇴치할 실질적인 내용을 담은 법이 조속히 마련될 필요가 있다는 데에 기본적으로 찬성한다. 다만 관련 법안이 직접 영향을 미치는 관계자의 의견 수렴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의원입법안 논의 과정이나 시행령 준비과정에서 과학기술인들이 주장하는 부작용이나 문제점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보완해야 한다고 본다. 또 선진국들이 기술 유출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면서도 고급 인재가 현장에서 격리됨으로써 받게 될 불이익에 대한 보상도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은 충분히 참고할 만하다.
정치계나 정부가 이번 기회에 기술유출이 심화되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를 좀더 살펴봤으면 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과학기술인들의 불안한 고용조건과 연구개발에 대한 불만족스러운 보상체계도 상당부분 작용하고 있다고 본다. 그런 만큼 연구원들이 자부심을 느끼며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고 핵심기술의 개발에 있어서는 그 공을 인정해주고 합당한 대가를 제공하는 것이 원천적인 치유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기술보유기업들의 해외 진출로 인한 기술 유출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이들 기업이 가능하면 국내에 남을 수 있도록 기업을 운영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정부는 인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