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의 그늘이 길어지면서 곳곳에서 아우성이 터져나오고 있다. 일본식 장기 불황이 시작된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한때 아시아의 네 마리 용 가운데 하나로 지목됐던 우리 경제는 이대로 무력하게 추락하는 것이 아니냐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들린다. 역으로 얘기하면 그만큼 비상에 대한 간절한 염원이 담겼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리 경제는 현재 골드만삭스가 말한 넛크래커 상태는 아니더라도 일본에 눌리고 중국에 치이는 샌드위치 상황에 몰려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본의 고급 기술과 중국의 물량 공세를 효과적으로 차단하고 나름의 경쟁력을 갖추는 것만이 우리 경제가 위기에서 벗어날 유일하고도 강력한 수단이다.
고임금과 관리비 증가에 따른 생산성 저하는 비단 우리만의 고민이 아니다. 이 문제에 관한 한 선진국은 우리보다 오히려 더 많은 고통을 겪고 있다. 외국 기업의 CEO들을 만나보면 그 사실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그들은 하나같이 사원들로부터 고액 연봉이나 과도한 휴가 요구에 시달리고, 노동시장 유연성에 따라 이직률이 높아 애를 먹고 있다고 실토한다.
어디를 막론하고 그러한 요구는 고급 기술자에게서 더 많이 나타난다고 한다. 특히 IT산업의 경우 제품 라이프 사이클이 매우 빨라져 그만큼 신속하게 시장의 요구에 대처해야 하는데, 이를 뒷받침할 연구 인력의 이탈이 증가하면 결국 기업의 경쟁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시장의 흐름을 우리는 정확하게 꿰뚫어 보아야 한다. 지구촌의 여러 민족 중에서 우리처럼 강인하고 열정적인 민족이 어디 있는가. 부존 자원이 하나도 없는 땅을 온몸으로 개척해 부를 일궈온 민족이 아니던가. 우리의 가장 큰 자원은 두뇌다. 세계 50위권에 드는 대학이 단 한 곳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만들어낸 여러 기술이 세계를 제패하고 있는 현실이 그것을 입증한다. 이 두뇌야말로 미래의 한국을 먹여 살릴 최대의 밑천이자 경쟁력이다. 이 우수한 두뇌의 역량을 어떻게 최대화할 것인가를 깊이 고민해야 한다.
우리가 지닌 이 무궁무진하고 고부가가치의 두뇌 자원을 최고 상품으로 개발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부단하고도 집중적인 연구다. 곧 우리나라 전체를 거대한 연구소로 만드는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기술 개발에 매진하고 연구인력 양성에 온 힘을 기울인다면, 우리는 선진국 고급 기술자 연봉의 절반 아니 그 이하를 가지고도 얼마든지 첨단 기술들을 창출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1년에 한달 이상 휴가를 즐기며 3년 걸려 개발해낸 것을 우리는 1년 만에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또 노동의 유연성만을 강조해 적과의 동침도 서슴지 않는 그들에게 우리는 인간적 유대 관계의 힘을 보여주고, 기술이란 컴퓨터 파일이 아니라 인간의 두뇌 속에 축적되는 것임을 자랑스럽게 알려줄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세계 시장은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다. 제품의 라이프 사이클은 하루가 다르게 빨라지고, IT산업의 지형 또한 급속히 변모해가고 있다. 이에 따라 경영자들의 고민은 새로운 제품을 얼마나 빨리 차별화해서 만들어내느냐에 쏠리고 있다. 상황이 이러한 만큼 이제 기업도 한층 더 뚜렷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체감할 수밖에 없다. 많은 분야에서 더 많은 제품을 신속히 개발해내야 하므로 그에 따른 연구·개발(R&D) 비용도 만만치 않을 뿐더러, 그 과제를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할 주체도 많지 않다는 것이 그들의 큰 고민거리로 떠올랐다.
따라서 앞으로는 연구·개발에도 아웃소싱 바람이 필연적으로 불 수밖에 없다. 특히 연구 인력의 고임금화와 이직률 상승에 시달리는 선진국 기업들에 아웃소싱은 더없이 훌륭한 대안이 될 것이다. 일본은 경쟁 대상이어서 마땅치 않고, 인건비가 싼 중국은 기술 개발 후 기술 도용이 두렵고, 결국 세계의 이목을 모을 곳은 우리나라다. 인력과 기술의 인프라가 이만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며 갖춰진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시대의 흐름에 맞춰 이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표는 분명하다. 대한민국을 거대한 연구 요람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래야 세계 유수 기업의 연구소들도 더 유치해 올 수 있고, 세계 시장의 중심에 서서 우리의 역량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정익 인피트론 대표 jichoi@infitr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