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서의 베스트셀러. 미국의 유명한 서양사학자인 로버트 단턴이 유럽 금서의 사회사를 얘기하면서 던진 다소 역설적인 화두다. 단턴은 그의 저서 ‘책과 혁명’에서 프랑스 혁명의 근원을 ‘책’에서 찾았다. 그것도 다름 아닌 정부가 판매를 불허하는 금서였다.
혁명의 근원으로서의 금서는 정보의 원천을 의미한다. 인류 역사상 정보를 독점하는 측은 기득권자다. 따라서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보의 원천인 금서의 유통을 막는 것이 급선무다.
하지만 금서의 유통은 교묘하다. 아무리 출판사를 단속하거나 유통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려 해도 완벽하게 막을 수는 없다. 정보 수요가 있으면 공급도 따라가기 마련이다. 예컨대 프랑스 혁명 당시 금서들은 ‘철학적 상품’이란 말로 포장되거나 ‘은밀한 책’ ‘마약’ ‘고통’ ‘철학적 서적’ 등으로 둔갑했다.
금서는 음란물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요즘 인터넷상의 음란물과 같은 종류다. 당연히 남녀간의 은밀한 사랑이나 음담패설이 주류다. 프랑스 혁명 당시에는 정부를 비판하거나 기득권층을 공격하는 책들도 공공연히 돌아다녔다. ‘앙시앵레짐’을 타파하자는 혁명적인 얘기들이 책을 통해 유통됐다는 의미다. 당시 사회상으로 보면 금서는 흥미로운 얘깃거리가 넘쳐나는 정보 유통의 보고였다.
정부나 기득권층이 노발대발했음은 물론이다. 서적상을 대대적으로 단속하고 관련 인사들의 처벌 수위를 높였다. 하지만 금서들은 ‘철학책’으로 둔갑돼 유럽 전역을 돌아다녔다. 아무리 서적 유통상을 단속해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오죽하면 ‘어느 곳에나 있으면서도 아무 데도 없는 것’으로 당시 사회상에 정통한 학자들이 금서를 얘기했을까.
요즘 들어 기업 내 언로가 막히는 현상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경우는 다르지만 기업 내 각종 정보도 소위 프랑스 혁명 당시의 ‘철학책’처럼 유통된다. 몇몇 사람만 아는 듯이 보이는 정보라 하더라도 반드시 유통되기 마련이라는 얘기다. 바야흐로 인사와 조직개편의 계절이다. 기업 내부의 언로를 개방하고, 기대에 부응하는 인사와 조직의 혁신에 귀를 기울일 때다. 기업 내외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기업은 미래가 없다.
IT산업부·박승정차장 sjp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