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포럼]산업별 수요에 부응하는 투자펀드

산업별 수요에 부응하는 투자펀드가 필요하다. 예컨대 기술개발에 전력을 기울이는 신생기업이 1억∼20억원 규모의 투자금을 유치해 기술을 개발하고 사업 시작에 나서는 것은 매우 힘들겠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이 정도 규모의 투자금 유치는 국내 벤처캐피털 기업과 금융기관 또는 정부 지원을 통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이 기업이 1차 기술개발을 끝내고 확장 단계에 들어섰을 때, 또 2차 기술개발에 나섰을 때 사정은 달라진다. 필요한 자금 규모가 보통 1차 때의 3∼5배 이상 되는 것이 보통이다. 우리나라에는 이런 규모의 투자금을 댈 투자기관도 시장도 없다. 국내 벤처캐피털 규모는 아주 작고, 여타 금융기관은 담보 없는 금융기법은 엄두도 못 낸다.

 또 하나, 기술개발에 성공하고 안정적 매출을 올리는 연구개발(R&D)형 기업이 있다. 당연히 자본시장 활용이 필요한 기업이다. 그러나 우리 코스닥 시장은 뉴 비즈니스를 위한 직접 금융조달시장이라는 기능을 상실했다. 코스닥 진출에 마음이 내키지 않을 것이다. 가면 무엇을 할 것인가. 자연스럽게 해외 자본시장 진출을 꿈꾼다.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생기는데, 실제로 일본 등 선진자본 신시장에서 국내 유망기업 유치 움직임이 곳곳에서 포착된다. 나쁜 일은 아니지만 이왕이면 하는 아쉬움이 남게 된다.

 이 기업들은 진정한 의미의 벤처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우수하고, 확장 단계에 있는 벤처기업이 양질의 투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금융인프라가 아주 취약하다.

 여기에서 우리는 과거 벤처산업정책의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기존 창업 및 중소기업 정책과 차별화가 잘 안 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벤처인증제도를 통해 수만 개의 벤처기업을 양산하는데 몰두하다 보니 또 하나의 창업 또는 중소기업 정책이 되고 만 것이다. 정부가 곧 내어놓을 벤처정책은 초점을 좀더 높은 곳에 두면 좋을 것이다.

 개념이 분명치 않은 수많은 벤처기업을 양산하는 것에서 개념, 내용, 비전이 분명 한 단계 높은 수준의 기업군을 구체적 업종과 산업별로 만들어내는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

 바이오, 부품·소재, IT 등 구체적 산업분야별로 유망 벤처기업군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방안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산업 특성에 따라 투자자금을 장기펀드 형식으로 공급하는 일이 중요하다.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투자를 통해 기술이든 경영이든 전략적 제휴와 시너지 효과를 최대한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장기펀드 목적은 우선 시장의 균형을 잡아주는 것이다. 자금 공급과 수요는 시장의 유행에 따라 균형을 잃게 된다. 최근 투자시장은 IT산업 위주로만 형성되어 있다. IT산업을 위해 설계된 자금을 부품·소재나 바이오 산업에 투자하겠다고 나서는 주체들은 모두 다른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기술융합시대로 접어든 지금 산업 간 불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정부만이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펀드는 또 장기적인 관점에서 일관되고 전문적인 식견으로 투자금을 공급하는 목적도 가진다. 바이오나 IT 그리고 부품·소재산업에 필요한 투자자금은 기간과 운용방식, 운용 주체의 선택, 평가방식 등에서 서로 다르다. 각각의 산업에 적합한 전문적 투자자금의 공급을 이루어내는 것은 새로운 성장산업 정책에 있어서 핵심적 과제가 될 것이다. 위험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분야에는 투자가 실물을 선도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신성장 산업을 위한 정부의 지원은 시장 판단을 존중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우수한 벤처기업군 육성은 정부의 일방적 지원과 드라이브로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시장의 선택 위에 정부의 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시장친화적 시스템에서만 성공할 수 있다고 본다.

<이성원 한국부품·소재투자기관협의회 부회장 lee3922@kiti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