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무서운 도덕적 해이는 경쟁을 기피하거나 무서워하는 것입니다.”
우남균 LG전자 사장이 부산대학교 대강당을 가득 메운 수백여명의 학생들에게 던진 이 한마디가 두고 두고 귓가를 맴돈다. 두 시간 가깝게 이어진 우 사장의 강연은 강당에 모인 학생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가 꺼내 놓은 비유는 통렬했다. 우 사장이 LG전자(옛 금성사) 신입사원이었을 때 그는 소위 ‘가방모찌’였다. ‘사원 우남균’은 해외 바이어의 숙소와 통역을 담당하고, 술집에서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업무를 맡았다.
그때 가장 대표적인 방문객은 세계 최고 가전업체인 제니스의 한국 담당 Mr.프레스턴이었다. 1974년 제니스는 매출 9억1000만달러의 공룡 업체였고, LG전자는 매출 53000만달러짜리 중소기업이었다. 그는 Mr.프레스턴이 올 때마다 공항을 나가 호텔 체크인을 돕고 회사로 ‘모셔오는’ 일을 담당했다. 바이어를 모신 뒤 수유리 집으로 돌아오는 날 통금에 걸려 번번이 수유리 파출소 신세를 지기도 했다.
1995년 7월 15일 그는 제니스를 다시 방문했다. ‘가방모찌’가 아닌 LG전자가 58% 가량의 지분을 인수한 제니스의 점령군 사령관으로서. 우 사장은 거기서 70년대 중반 자신이 ‘모셨던’ 한국담당 Mr .프레스턴을 만났다. 그는 아직도 그곳의 직원이었다. 우 사장으로서는 30여년 만의 화려한 복귀였다.
이 일화는 중요한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파트너십’, 다른 하나는 ‘경쟁’. 우 사장은 “상대를 죽이는 경쟁이 아니라 서로 발전할 수 있는 아름다운 경쟁이 진정한 승부사”라고 말한다. 주어진 위치에서 상대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결국 경쟁이고 곧 성장의 원동력이라는 지론이다.
“60, 70년대 100대 기업 중 살아남은 기업이 몇 개나 있습니까. 유럽의 필립스 외에 거의 없습니다. 치열하지만 진정한 경쟁을 하지 않았다면 LG도 삼성도 없었을 겁니다.”
깊게 새겨볼 말이다.
디지털산업부 김상룡기자@전자신문, sr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