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0년대 중반 국내 가전 시장에서는 기막힌(?) 일이 발생한 적 있다. 지금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을 육각수 냉장고가 바로 그것이다. 이 냉장고는 일반 물을 넣으면 육각수(화학적 구조가 육각형 고리 구조를 이루는 물)를 만든다는 제품이었다. 당시 육각수가 몸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자 ‘육각수 제조 냉장고’가 나온 것이다.
하지만 당시 시민단체들에 의해 육각수 효과가 거의 없는 것으로 밝혀지자 이 냉장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적 있다.
벌써 10년이 다 된 ‘육각수 냉장고’를 다시 언급하는 것은 최근 가전업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이와 유사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웰빙이 사회 트렌드로 자리매김하면서 음이온·은나노 가전 등 건강을 고려한 신상품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가전업체들이 육각수 냉장고 때처럼 사람들의 관심에 편승해 제품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때가 많다.
얼마 전 가전 매장에서 본 음이온 헤어드라이어는 음이온을 발생시킨다고 할 뿐 음이온 발생에 따른 오존 발생량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또 최근 많은 관심을 불러오고 있는 은나노도 업체들의 눈가리기식 광고·홍보로 인체에 무해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식약청에서는 은 또는 은을 전기 분해한 용액을 식품이나 의약품·화장품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거나 엄격히 제한하고 있으며, EU와 미국 FDA에서도 은·은이온 등의 부작용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하루가 멀게 가전제품과 의류, 심지어는 은을 물에 녹여 마실 수 있는 제조기까지 판매되는 현실이다. 업체들이 보다 정확한 정보를 공개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신비주의 마케팅에 대한 소비자의 현명한 판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윤건일기자@전자신문, beny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