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최대 통신장비업체인 화웨이(華爲)가 KT의 차세대 광 네트워크 핵심 백본장비인 다중서비스지원플랫폼(MSPP) 공급업체로 선정됐다고 한다.
국내 차세대 통신장비 시장이 화웨이에게 뚫린 것이라는 점에서 국내 업체들이 경쟁력 강화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이번 일은 중국 통신장비 업체들의 기술력이 이미 우리를 압도하고 있거나 턱 밑까지 근접했다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는 점에서 국내 장비업계가 간단하게 생각할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화웨이가 국내에 통신장비를 공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서울 일부 지역의 시분할다중화(TDM) 광전송장비를 공급한 사례도 있어 시장 진출 자체만을 놓고 볼 때 별 일 아닌 것처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차세대 핵심 광전송장비인 MSPP를, 그것도 KT의 정식 시험 테스트(BMT)를 거쳐 공급하게 된 것은 화웨이의 본격적인 국내 시장 공세를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볼 수 있다.
더구나 이번 KT의 BMT에는 화웨이 외에도 중국계 미국 회사인 유티스타컴도 참가했다는 점이다. 지난 9월에 열렸던 부산ITU텔레콤아시아2004에 화웨이· ZTE 등이 선보인 MPLS· DWDM· IPv6지원라우터에서도 확인되었지만 중국은 가격뿐만 아니라 기술면에서도 세계 수준에 올라 있어 국내에 진출할 경우 중소통신업체들에게 크다란 위협이 될 수 있다.
세계 통신장비 시장은 중국업체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화웨이와 중싱텔레콤 등이 가격과 기술력을 앞세워 세계 70여 개국서 유명 선발업체인 노텔 등과 정면승부를 벌이고 있다. 화웨이만 보더라도 올해 매출이 2002년보다 배로 늘어난 50억 달러를 기록할 것이라고 하니 무서운 성장세다. 이 같은 중국의 급성장세와는 달리 우리 업체들의 통신장비 수출 실적은 미비한 실정이다. 2002년까지 몇억 달러씩 수출하던 CDMA와 인터넷 장비들이 중국업체와 알카텔 같은 메이저에게 밀려 수출 명목만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답답할 뿐이다.
우리는 수출 부진의 이유로 걸핏하면 중국의 저가 경쟁을 탓하곤 했다. 하지만 최근 브로드밴드 장비공급업체로 화웨이를 선정한 스웨덴 반버켓텔레켓의 카린 앤데르손 사장이 “중국통신장비는 가격과 성능에서 유명업체에 안 뒤진다” 고 지적한 것만 보더라도 저가탓으로 만 돌릴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동안 국내 통신장비업체들은 발주업체들이 지나치게 조건이 까다롭거나 아니면 국산 장비를 홀대한다고 기회만 있으면 볼멘소리를 해 왔다. 하지만 평소에 한 수 아래로 접어보고 있던 화웨이 통신장비의 공급으로 인해 이같은 국내 장비업체들의 주장도 설득력을 잃게 되고 말았다. 물론 잘못된 선입견으로 국산을 기피하고 외제를 선호하는 일부 발주업체들의 자세도 문제는 있다. 발주업체의 국산사용 기피는 장비개발업체의 연구 개발 투자 부진으로 이어져 결국은 국산 장비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악순환만 되풀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가 IT강국이라고 자만하고 있을 때 중국은 산업 환경을 정비하고 기술 인프라를 구축해 경쟁력을 배가시켜왔다.
최근의 동북아 3국의 디지털산업 요소별 경쟁력 비교에서 우리나라가 중국에도 밀리는 것으로 나타난 것처럼 향후에도 이런 경향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과 중국에게 협공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술 투자는 뒷전인 체 그저 그런 제품만 만들어낸다면 우리에겐 미래가 없다고 본다. 우리가 경쟁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던 통신장비 분야에까지 중국 업체에 시장을 내줄 위기에 몰려 있는 현실을 직시, 정부와 업계가 머리를 맞대고 통신장비 산업의 기술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는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