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우리 과학기술계의 큰 별이셨던 최형섭 박사님이 타계하셨다. 1966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설립을 주도하신 고 최형섭 박사님은 평소에 과학기술이 국민경제에 이바지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을 단순히 아는 지식이 아니라 실제로 활용 가능한 지식, 즉 ‘아는 과학’에서 ‘쓰는 과학’으로 넘어가야 한다고 역설하셨다.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KIST는 설립 당시 산업현장에 필요한 기술을 개발해 공급하는 국책연구소로 출발했고 60∼70년대 국가산업 발전의 원동력이 됐다.
최근 청소년의 이공계 기피현상 심화 등 과학기술 위기론이 대두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이에 대응해 과학기술부 장관의 부총리 격상, 과학기술혁신본부 출범 등 과학기술 중심사회 구축을 위한 범부처적 노력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그간 과학기술계가 ‘쓰는 과학’ 즉, ‘응용과학’에 치중한 나머지 기초 및 원천기술 분야의 연구개발에 소홀했고 이것이 도리어 ‘응용과학’의 지속적 발전을 저해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기초 및 원천기술은 다양한 응용기술 개발을 유발하는 과학지식의 ‘발전소’ 역할을 하므로 ‘응용과학’의 발전을 위해선 지속적으로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최근 황우석 서울대학교 교수의 배아줄기세포에 관한 연구, 신희섭 KIST 박사의 뇌의 작용에 대한 연구 등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는 기초 및 원천기술의 연구결과가 잇따라 나오는 것을 볼 때 국내 기초과학 역량을 활용해 과학기술계가 재도약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에 과학기술 연구기관에 몸담아온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기초과학’에 집중하면서 동시에 ‘응용과학’, 즉 상용화에 목적을 둔 연구개발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
상용화에 목적을 둔 연구 개발이란 기초 및 원천기술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를 통해 원천 특허를 확보하고 아이디어 단계에서 최종 개발에 이르기까지 어떤 단계에서든 상용화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두어야 한다는 의미다.
둘째, 정부지원 연구의 성과를 효과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지난 2000년 기술이전촉진법 제정 이후, 정부지원 연구의 성과관리가 강조되고 기술이전 전담조직 확충 등 각종 제도적 기반구축이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
또 이번 과학기술혁신본부 출범을 계기로 범 부처 차원에서 더욱 효율적으로 통합성과관리 체계가 조기에 구축될 것으로 기대된다. 앞으로 과학기술혁신본부가 정부지원 연구의 성과를 체계적으로 관리해 기초 및 원천기술 분야에서 나온 뛰어난 결과물들의 민간 이전이 촉진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셋째, 과학기술계에 브랜드 개념을 도입해 활용할 필요가 있다.
브랜드 또는 이미지는 사람들에게 특정 상품이나 직업에 대한 신뢰를 심어주고 충성도 높은 고객이 되도록 만드는 힘이 있다. 그러나 그간 과학기술계는 연구성과나 과학기술인에 대해 긍정적인 이미지를 부여하려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기울이지 못함으로써 그 가치를 사장시킨 면이 있다.
따라서 과학대중화 노력을 통해 과학기술의 가치를 높이고 이를 통해 과학문화 확산과 과학기술인의 사회적 위상 제고 등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 세계적인 업적을 가진 뛰어난 과학자들을 발굴해 연구를 지원함으로써 장기적으로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효과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는 지난 40여년간 축적해 온 우리의 과학기술력에 기반을 둔 기초 및 원천기술의 개발을 토대로 고부가가치의 응용기술 개발을 촉진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즉 ‘아는 과학’을 바탕으로 ‘쓰는 과학’을 발전시키고, 더 나아가 과학기술계의 확고한 브랜드를 구축하며 경제사회적 기여도를 높이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는 우리가 안고 있는 과학기술의 위기를 극복하고, 신산업 창출을 통한 국가경쟁력 제고의 지름길이 될 것이다.
◆김유승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 yosekim@kist.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