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칼럼]재일동포의 눈에 비친 남북 IT교류

지난주 북한에서 중국으로 출장온 친구를 만나기 위해 베이징에 다녀왔다. 그 친구는 12년 동안 필자와 함께 소프트웨어(SW)를 개발한 아주 절친한 연구 파트너였다. 그는 지난달 말 평양에서 기술자 4명과 함께 베이징으로 나왔다고 한다. 중국은 물론 일본에도 여러 차례 드나들며 IT 분야에서 꾸준히 일을 해오며 외국의 사정을 좀 알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그는 ‘충격받았다’는 말로 반갑다는 인사를 대신했다. 8년 만에 중국에 다시 왔지만 베이징이 이렇게 괄목할 정도로 급변하고, 인터넷이 폭발적으로 보급돼 있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북한이 개발한 지문열쇠시스템이 중국 공안기관에 납품돼 유지 보수를 위한 기술자 20여명이 중국에 상주하고 있다며 은근히 자랑삼아 늘어 놓았다. 7년 전 북한의 지문열쇠개발팀과 함께 중국과 태국 등지로 다니며 겪었던 고생이 열매를 맺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도 덩달아 어깨를 으쓱거렸다.

 지난 2000년 남북한 정상의 6·15 공동성명은 남북 협력의 새로운 장을 연 계기였다. 그런 분위기에 젖어 사람들은 우리의 기술로 세계에서 으뜸가는 IT국가를 건설하겠다는 기대에 부풀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후 금강산 개발과 개성공단사업 외에는 이런저런 정치적 이유로 기타 교류는 지지부진한 실정이다. 필자는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재일 동포 기술자로서 북한이 개발한 SW를 일본에 유통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남북이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최적의 도구인 IT산업에 대해 관심이 많다. IT산업은 비정치적으로 접근해 갈등을 풀어낼 수 있는 통일의 열쇠라는 점에서 더욱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북핵 문제 등으로 IT교류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그저 안타깝기만 할뿐이다.

 남북 IT협력이 활성화하려면 남과 북의 직접 채널도 중요하지만 일본에 있는 제일 동포 기술자나 기업을 활용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본다. 북한의 폐쇄적인 체제로 인해 직접 채널을 통한 IT협력은 정보 습득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즉 완충 조정 창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조총련 산하 재일본조선인과학기술협회(과협)는 북한과 수많은 IT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북한 기술자·담당자들도 과협을 통해 남한과 공동 연구하면 많은 득을 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북한에서는 인터넷 통제로 정보를 마음대로 얻지 못해 세계적 수준의 SW를 개발하기 어렵다. 남북의 ‘정보 소통 부재’가 바로 남북 IT 교류의 가장 큰 장애 요소인 것이다. 북한 사람들이 IT정보를 공유하려면 상상을 초월하는 시일이 걸릴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인터넷의 제약은 오히려 기초과학·기초이론 쪽으로 연구력을 집중하는 결과를 만들어, 수학 실력이 매우 뛰어난 IT 전문가들을 양성할 수 있는 토대가 탄탄해졌다. 남한 기업들이 북한 SW 우수 인력을 활용해 응용SW를 공동으로 개발하려는 시도는 매우 바람직하다. 하지만 문제는 이 같은 시도가 북한의 일부 특정 기관에만 집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북한 IT인력의 양성과 균형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남한 기업들은 북한의 IT인력이 다양하게 양성될 수 있도록 토양을 만드는 데에도 힘써야 한다.

 최근 남한에서 ‘남북 공동 IT 교류위원회(가칭)’ 창설을 위한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는 남북 IT교류 활성화에 매우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다만 북한과 공동연구를 통해 북에 대한 풍부한 경험이 있는 과협·재일 동포 기업들도 폭넓게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검토한다면 효율성이 한층 극대화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익만 추구할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상호 신뢰와 인내심을 바탕으로 한 남북 IT교류가 지속되기를 민족의 한 사람으로서 기원한다.

 <양영부 재일본 조선인과학기술협회 컴퓨터전문위원회 고문·유니코텍 사장 ryb@cgs.co.j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