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무선CP는‘닭 쫓던 개’

요즘 IT와 무관한 것으로 여겨져 왔던 각종 사회적·문화적·경제적 기능이 스마트화, 통합화되는 디지털 컨버전스 개념이 화두가 되고 있다. 통신과 방송 등 IT산업 간의 통·융합을 비롯해 IT산업과 금융, 유통, 자동차와 같은 전통산업 간 영역파괴현상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로 대표되는 유비쿼터스, 정보화, 디지털화를 통한 새로운 경제시스템 및 생활영역 창출의 중심에 무선인터넷이 존재하고 있다.

 자연스러운 결과로 유무선 인터넷의 연동 내지 통합을 골자로 한 망개방 움직임은 오래 전부터 진행돼 오고 있다. 하지만 요즘 한창 이통사와 유선포털 사이의 이견으로 힘겨루기를 계속하고 있는 양상이다.

 유선포털 측은 이통사가 “불공정행위를 함으로써 다른 사업자의 시장 진입을 막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접속이용에 필수인 단말정보와 기술정보 미제공 △콜백URL SMS의 전송 방해 △무선콘텐츠 심의에 대한 차별 △단말기 접속방식의 독점 △기술개발에 필요한 플랫폼 규격 미제시 등을 이유로 들고 있다.

 언뜻 이통사가 불성실하게 대응해서 국내 무선인터넷의 발전이 저해되었고, 마치 큰 위기에 처한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한국 무선인터넷은 세계에서 가장 앞선 기술과 비즈니스모델을 선보여 왔고, 어디에 내놔도 칭찬을 받을 만큼 훌륭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 이것은 이통사의 아낌 없는 투자와 무선 CP들의 각고의 노력을 바탕으로 이뤄진 것이다. 아무리 좋은 명분이라도 자신들의 주장만을 너무 강조하면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 개발한 가치를 자칫 무턱대고 공유하자는 식의 억지로 비쳐질 수도 있다.

 망개방을 하더라도 철저한 대비 없이 진행하다 보면 스팸메일 난무, 약탈적인 가격정책, 콘텐츠의 품질 저하, 불법 음란자료의 범람 등 이미 오래 전부터 예상된 문제점뿐만 아니라 수요는 고정된 상태에서 공급만 늘어나게 되어 급속도로 시장 자체가 공멸할 수도 있다. 디지털 유목민이라 일컬어지는 네티즌의 성격상 온라인상에서 콘텐츠의 접근경로가 늘어난다고 해서 판매량도 같이 늘어난다고 볼 수 없으며, 무선인터넷 업계는 이미 업체 난립과 치열한 경쟁으로 수익성이 급격히 떨어지고 공급과잉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통신네트워크의 공공재적인 성격을 빌미로 주장하는 내용이나 절차에 무리가 따른다면 이통사는 새로운 기술개발 및 시스템 구축에 더는 투자하지 않을 것이며, 이는 곧 국가 전체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다.

 한편 망개방 협상에 있어서 재미있는 현상은 지금까지 무선인터넷 산업을 성장시키는 데 한 축을 지탱해왔던 무선CP들은 협상테이블에서 제외되고, 지금까지 무선인터넷 발전을 위해 어떤 기여를 해 왔는지 불분명한 유선포털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망개방의 논의가 처음 생겨난 것은 사업초기 이통사에 대한 불신과 오해로 인해 무선CP들의 조급한 요구에 따른 것이다. 사업을 진행해 가면서 이통사는 인적, 물적 시스템 확충 및 인프라 구축을 통해 합리적인 평가와 신속한 피드백을 유지하고 있다. 무선CP는 하청관계가 아니라 사업동반자 관계로 육성 지원되었고, 새로운 비즈니스모델의 정립을 위해 투자와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작금의 망개방 논의에서 정작 무선CP는 소외돼 있으며 실제로 유선포털을 중심으로 망개방이 실시되면 역할축소는 물론 존재 자체가 유명무실해질 것으로 얘기되고 있다. 독자적인 빌링시스템과 서버구축, 브랜드 인지도와 마케팅능력의 부족으로 인해 유선포털과의 경합이 회의적이다. 따라서 유선포털이 CP로 재종속되거나 무선인터넷사업을 포기하고 신규사업 발굴에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의 이통사와 무선CP는 무선인터넷을 세계 어디에 내놔도 자랑할 수 있을 만큼 모범적인 산업으로 자리잡아 왔다. 지금까지 무선사업을 이끌어온 이통사의 집중적인 투자와 무선CP들의 혼신의 노력은 결코 유선포털의 일용할 양식을 마련하기 위함이 아니다. 유선포털은 이미 확립된 비즈니스모델의 차용이 아니라 새로운 매출원 확대를 위해서 배전의 노력을 경주해야 하며, 이통사·무선CP·유선포털이 상생하는 진정한 의미의 망개방을 실현해야 한다.

<김정균 거원시스템 상무 jgkim@cow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