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운영하는 회사가 지난 10월 상하이에서 열린 중국의 게임전시회 ‘차이나조이’에 참가하게 됐다. 미숙한 전시회 운영 등 아직 한국보다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게임전시회를 보기 위해 끝없이 몰려드는 중국의 수많은 젊은이를 바라보면서 중국이 곧 게임 강국이 될 날이 멀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자리에서 전시회에 출품한 자체 개발작 ‘실크로드’의 소재에 관해 중국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게 됐는데,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받았다. 즉 “실크로드는 중국의 문화인데, 왜 한국 사람들이 중국 문화를 가지고 게임을 만들어 다시 중국에 되팔려고 하느냐?”였다. 진지하게 따져 묻는 질문에 순간 좀 당황하면서도 이것이 중화사상, 즉 자기들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뿌리 깊은 자긍심이구나 싶었다.
하지만 곧 다른 중국 기자들과 대화하면서 중화사상의 발로라기보다는 일종의 질투심의 표현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과거 실크로드의 큰 축을 이루었던 자기들의 역사를 자국에서 게임으로 승화시키지 못하고 한국이라는 조그마한 나라에서 선점하고 활용하는 것이 못마땅했던 것이다.
필자는 우리의 문화를 발굴하고 세계적으로 인정받으려고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주변 문화권의 콘텐츠를 발굴해 포장하고 이를 상품으로 만들어 파는 지혜도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이미 일본의 코에이 등 여러 게임 업체가 자국의 역사는 아니지만 서양에도 널리 알려진 동양 문화권의 콘텐츠를 잘 활용하여 많은 부를 쌓았다. 무형 콘텐츠는 그 내용을 얼마나 매력적으로 구현하고 포장하는지가 중요하겠지만 가장 먼저 선점하고 활용하는 자가 가장 큰 수혜를 볼 수 있다.
다행히 여러 콘텐츠 관련 산업 중 우리나라는 온라인 게임 분야에서만큼은 세계에서 가장 독보적인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다. 또한 어떤 콘텐츠도 이 같은 독보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좋은 상품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기본 잠재력을 갖고 있다.
서양에서도 이미 진부한 소재가 돼버린 그들의 문화를 온라인 게임에 꼭 적용해야만 하는 교본처럼 재탕, 삼탕 똑같이 따라만 할 것이 아니라 조금 더 가까운 우리 주변의 문화권에 대해 이해와 관심을 가지고 바라본다면 아직 상업화되지 못하고 잠재된 수많은 콘텐츠를 발견할 수 있다고 본다.
부존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한 방울의 석유라도 더 확보하기 위하여 대륙붕 이곳 저곳은 물론 더 먼 곳까지 석유시추선을 보내 탐사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처럼 이제라도 더 많은 콘텐츠를 확보하고 개발하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해야 한다. 이는 게임산업이 초기 기술력과 그래픽 품질 경쟁에서 이제는 기획력과 차별된 콘텐츠의 승부로 옮겨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게임전시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필자는 또다시 많은 고민을 하게 됐다. 며칠은 걸려야 다 볼 수 있다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베이징 자금성, 길이가 5000㎞나 이른다는 만리장성, 70만여명이 동원돼 만들었다는 진시황릉 등 엄청난 크기와 문화를 가진 중국의 잠재된 콘텐츠에 그들의 IT기술력까지 결합된다면 엄청난 파급 효과를 가져올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그에 반해 IT 기술력만을 믿고 게임 강국이라고 안주하기에는 현재 우리의 위치가 너무 불안하게만 보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왜 우리 것을 한국이 만들어 팝니까?”라는 어쩌면 우매하고 약간은 억울해하는 질문 속에서 필자는 그동안 고민하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전찬웅 조이맥스 사장 ceo@joymax.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