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이 함께 운영하는 사이버 통일공간, 그런 공간이 혹 있지나 않을까 내심 기대를 갖고 온 종일 서핑을 했다. 그런데 그 어디에도 없었다. 사이트 하나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인데 말이다. 그저 아직 남북이 함께 넘어야 할 산이 많고도 많다는 뜻이겠거니 하며 씁쓸히 넘기기엔 너무 가슴이 답답했다.
한때는 남북 간의 화해와 통일의 물꼬가 거침없이 트일 듯 기대감에 부푼 적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면, 과연 통일의지가 진정 있기나 한 것인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북한도 어렵고 우리도 어려운 상황이라 내치가 중요하겠지만 통일을 향한 보다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행동은 굼뜨다 못해 이제는 주저앉은 느낌마저 받게 된다.
무엇보다도 IT의 급속한 확산이 남북 간 사이버 교류의 새로운 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적지 않았고, 여러 기관과 단체가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 보면 그 기대가 참 부질없는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분단을 해결하는 기본이 서로 대화를 통해 이해를 증진하는 데 있기에 그 물꼬를 틀 사이버 공간을 활용하는 것에 실낱 같은 기대를 걸었다. 대화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은 뒤 내 이야기를 하는 것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남북은 자기 주장만 할 뿐, 남의 말은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는 것 같다. 실리만을 챙기려는 계산된 대화로는 통일에 이룰 수 없다.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 북한 내 인트라넷 전산망이 그렇고, 남북 통일공간도 없이 북한관련 사이트의 폐쇄에만 급급한 남한도 그렇다. 사이버 심리전이니 체제 선전이니 하는 작은 돌멩이에 남북은 지나치게 소심한 것은 아닐까. 그러면서 남북 경제협력은 왜 하는지 모를 일이다. 좀더 통 크게 통일을 바라보았으면 한다. 남북은 여전히 전쟁중이라는 생각보다는 그래도 우리는 통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더 뚜렷해지는 쌍방 간의 멋진 노력과 결단 말이다.
우선, 사이버 통일공간부터 만들자. 통일 의지가 진정 있다면 쌍방의 전략과 충돌하지 않는 모든 영역에 대해 사이버 통일국가를 만들어 함께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 그야말로 통일 시뮬레이션이다. 미래 통일의 주인공이 될 남북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비정치적 콘텐츠와 활동으로 통일공간을 구성한다. 쉽게는 남북의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게임·오락·상식(과학·생활상식 등)에서 취미·일반학습·예술·언어에 이르기까지 공통분모를 찾는다면 민족 동질성 회복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것조차 서로 체제붕괴를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통일에 대한 의지 자체를 비판받아 마땅한 일이 아닐까.
최근 북한 이탈 주민의 한국사회 적응을 보면, 통일미래에 대한 소망이 사라질 정도다. 사회적 가치관의 차이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남한 주민의 무관심과 편견으로 이방인이나 귀찮은 존재쯤으로 취급받고 있다는 소외감과 사회적 고립감이라고 한다. 그만큼 우리는 통일에 대해 준비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북한 이탈자들의 남한사회 적응은 통일 후 남북한 주민 간의 사회통합의 예비과정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현재 6000여명에 불과한 이탈자들의 사회적응과정에서 이런 문제를 보인다면 통일 후 수천만명에 달하는 남북 주민 간의 사회통합은 암담하다. 이대로 통일로 간다면 우리 온 민족이 치러야 할 대가는 어쩌면 한반도의 몰락일지도 모른다. 상호간의 포용을 외면했을 때 민족적 정체성은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고, 통일은 그 명분과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이제는 공상적 통일의식이나 운동이 아니라,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통일의식과 자세로 임해야 한다. 그 중 하나의 방안이 미래의 통일국가를 위한 사이버 통일공간 건설이다.
<이원근 한국과학커뮤니케이션연구소장 lifegate@kisco.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