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환율전쟁과 수출 체질개선

환율 움직임이 정말 예사롭지 않다. 최근 미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다. 지난 29일에는 당국 개입에도 불구하고 원달러 환율이 1050원 밑에서 등락을 거듭했다. 이런 달러화 대비 원화 값은 세계적인 달러 약세가 본격화된 10월 19일에 비하면 9.4% 절상됐다.

 미국 정부의 ‘약한 달러 정책’ 때문에 주요 경쟁국의 통화 환율도 내려가고 있는 상황이지만 엔화나 유로화 등의 하락 폭은 원화보다 작다. 따라서 세계 시장에서 우리 제품의 가격경쟁력이 상대적으로 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유가 상승 등으로 어려움에 처한 우리 수출이 급격한 원화 절상으로 더욱 둔화될 우려가 있는 것이다. 현재 수출이 우리 경제의 유일한 버팀목이라 수출마저 흔들리면 큰일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이러한 달러 약세 추세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시장 일각에서는 1000원대를 지지선으로 여기는 것 같으나 최근의 흐름을 보면 이를 지키기도 쉽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다. 미국이 재정과 경상 적자 등 쌍둥이 적자 해결책으로 달러 약세를 계속 유도하고 있어 달러화가 어느 선까지 떨어질지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IT기업들은 조만간 ‘1달러=900원 시대’ 도래를 예상할 정도다. 달러 약세 흐름을 반전시키기에는 현실적으로 역부족이라고 보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라오스에서 개최중인 ‘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에서도 환율 문제가 최대 관심사로 부각됐고, 한·중·일 정상은 노무현 대통령의 제안으로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3국 공조체제를 구축하기로 했다. 그만큼 달러 약세가 아시아 지역에 미치는 영향이 심각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한·중·일 3국이 공조를 통해 환율 안정에 나선다고 하더라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환율 하락의 폐해는 벌써부터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무역협회가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환율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기업들의 70∼90%가 이미 출혈수출을 하고 있고, 70%는 채산성이 맞지 않아 신규 수주를 꺼린다고 한다. 기업들이 손익분기점 환율을 1127원, 적정환율을 1174원이라고 밝힌 것을 보면 지금 거래되는 환율이 얼마나 낮은지 잘 알 수 있다.

 때문에 정부나 기업이 과거처럼 안이하게 대처해서는 안 된다. ‘원화 강세’ 시대가 다시 도래할 것으로 보고 경제 시스템 전반을 재검토해 근본적인 대응책을 강구해야 한다. 단기적으로 고통이 따르더라도 중장기적으로는 기업과 우리 경제의 체질을 바꾸는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물론 환율 하락이 수입품 가격을 떨어뜨리는 이점도 있지만 수출기업의 채산성 악화는 피하기 어렵다. 생산제품의 90%를 수출할 뿐만 아니라 우리 수출의 40%를 담당하는 IT업계로서는 더욱 그렇다. 예전처럼 결제수단을 바꾸는 방식으로 채산성을 맞추려는 자세는 버려야 한다. 끊임없는 비용절감으로 환율 하락에 따른 충격을 흡수하는 한편 품질 향상과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로 수출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가격이 좀 비싸더라도 품질만 뛰어나면 수요는 있게 마련이다. 환율 덕분에 손쉽게 장사를 해온 국내 기업들은 환율 혜택이 줄어든 만큼 이제 기술력으로 승부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삼성전자, LG전자 등 대기업들은 내년 환율을 아예 세자릿수로 보고 환리스크 관리와 글로벌 생산거점 확보 등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어 주목된다. 하지만 중소 가전·부품업체들은 일부 환리스크 방어 외에 마땅한 대응책을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정부도 환위험 관리가 취약해 어려움이 가중될 중소기업에 대해선 세제·금융지원 방안 등 다른 지원책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