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말 3개 시범서비스 사업자를 선정하면서 본격화한 광대역통합망(BcN) 구축사업이 벌써 난항이 예고된다고 하니 걱정이다. 그것도 법·제도 정비의 불확실성에다 정부나 준비사업자의 투자 의지 부족 때문이라니 어처구니가 없다. 정부가 전략적으로 추진하는 프로젝트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정부가 BcN 사업 계획을 발표할 때만 해도 전망은 온통 장밋빛 일색이었다. 2010년까지 민·관 공동으로 2조원을 투입해 세계 최초로 전송 속도 50∼1000Mbps급인 광대역 통합망을 구축, 차세대 IT 핵심 인프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명실공히 IT 강국에 걸맞게 통신·방송서비스뿐만 아니라 이용자 중심의 유비쿼터스 서비스를 구현하겠다는 전략이었다. 정부 계획대로 추진될 경우 민간투자 유발 효과가 67조원에 이르는 등 부양 효과도 큰 데다 IT산업 활성화와 대외 경쟁력 강화라는 양수겸장의 정책이어서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이런 기대를 안고 출발했던 BcN 사업이 시범서비스 구축 초기 단계부터 자금 부족 등으로 차질을 빚고 있어 과연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가지고 출발한 정책이었는지 의아하다. 통신·방송 융합이 대전제임에도 불구하고 관련 법·제도 하나 교통정리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더욱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BcN 사업의 양대 축이라 할 수 있는 케이블방송사업자와 제대로 연계가 안 되고 있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지만 통신·방송 융합법 제정이 미뤄지는 한 시범서비스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BcN 시범서비스 사업이 대부분 융합서비스여서 현행 법·제도로는 불법이기 때문이다. 시범서비스 일정이 연기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여진다.
물론 모든 문제를 3개 통신 컨소시엄의 투자 위축과 방송사업사와의 연계 부족으로 돌릴 수도 있다. 하지만 투자를 뒷받침할 제도적 장치가 결여되어 있는 상황에서 기업의 거액 투자를 바라는 것도 무리다. 더구나 시범사업자 선정 때 케이블TV사업자를 배제한 것 자체가 잘못이지만 케이블TV사업자들이 독자적으로 차세대 케이블네트워크를 구축할 경우 자칫 케이블TV업계의 BcN 참여가 불가능해져 BcN 사업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BcN 참여 컨소시엄들은 이구동성으로 예산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 총투자 비용의 86%를 민간기업이 부담해야 하는 데다 요즘같이 어려운 경제 상황을 고려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무턱대고 정부의 지원에 기대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불황의 골이 깊은 때에 민간에게만 큰 부담을 지우는 것도 모양새가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특히 장비나 부품 개발업체의 경우 정부의 투자금이 적은 데다 사업자들의 제품 채택이 보장되어 있지 않은 까닭에 투자하는 데 애로 사항이 한두 개가 아니라고 한다. 이런 곳에 정부의 자금 지원이 절실한 것이다.
BcN 구축사업은 유비쿼터스시대를 앞당길 국가 프로젝트다. 시대 흐름에 맞고 마땅히 그 방향으로 추진해야 하는 정책이지만 참여기업들의 성숙한 협력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성공을 거둘 수 없다. 눈앞의 이익을 챙기는 데 혈안이 되어 소모적인 입씨름만 하는 업계의 구태도 이젠 사라져야 한다. 정부도 기업이 안심하고 연구개발하고 투자할 수 있도록 각종 규제를 철폐하는 투자분위기 조성에 나서야 한다. 정책만 덜컥 내놓고 추진 상황을 제대로 점검하지 않는 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BcN 구축사업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통신·방송 인프라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 국가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민·관 모두 보완책 마련을 위해 서둘러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