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종래 통신과 방송의 개념이 모호해지고, 네트워크·서비스·사업자 간 융합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등 통신과 방송의 경계가 급격하게 무너지고 있다. 휴대전화를 통해 TV를 시청하거나 케이블 방송으로부터 초고속인터넷 서비스를 제공받는 것 등이 실례라 할 수 있다.
통신과 방송의 융합은 우리에게 새로운 즐거움과 가치창출의 기회를 제공한다. 조만간 우리는 TV 드라마를 보면서도 여주인공의 드레스를 구입할 수 있고, 안방에서 리모컨 조작으로 간단하게 은행 업무를 처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 확산에 힘입어 전자 상거래가 활성화되었듯이, 통신과 방송의 융합에 발맞춰 TV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사업이 속속 등장할 것이다. 정부는 이 같은 통신·방송 융합이 활성화되면 향후 2010년까지 총 39조원 규모의 경제적 부가가치가 창출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시대의 대세라고 할 수 있는 통신·방송 융합 사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실질적으로 이를 주도할 수 있는 통신사업자의 참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통신·방송 융합에는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실어 나를 수 있는 광대역 네트워크가 필수적 요소인데, 통신사업자들은 이미 초고속인터넷 사업을 통하여 광가입자망과 기술적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다. 거기다 통신·방송 융합을 효과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풍부한 자금력까지 갖추고 있다. 따라서 케이블방송의 디지털 전환에만 1조6000억원 이상의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 상황임을 감안할 때, 국가 이익 차원에서 통신사업자가 보유하고 있는 풍부한 자원을 방송 산업에 적극 활용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함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주요 선진국들은 오래 전부터 통신·방송 융합에 대한 통신사업자의 참여를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통신사업자가 제공하는 IPTV와 같은 새로운 융합 서비스는 방송 사업 면허 등에 대한 기존 규제의 적용을 유보, 융합 서비스의 발전을 유도하고 있다. 또한 통신사업자가 자신의 설비를 이용해 자유롭게 방송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OVS(Open Video System)’ 제도를 신설, 통신사업자의 방송시장 진출을 돕고 있다. 일본 역시 ‘전기통신역무 이용방송법’을 제정해 통신사업자의 설비를 이용한 방송을 허용하고 면허조건을 등록제로 완화하는 등 통신·방송 융합을 위한 제도적 토대를 마련해 놓고 있다.
선진국의 사례에서 보듯이 통신·방송 융합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통신사업자를 적극적으로 참여시킬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이 먼저 조성돼야 한다. 특히 통신사업자가 제공하는 IPTV 등 융합형 서비스에 대한 규제를 최소화하는 것은 물론, 서비스 활성화를 위해 콘텐츠 경쟁력이 우수한 지상파 프로그램의 재전송을 허용하는 등 유연한 정책적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이와 함께 통신사업자도 지상파 프로그램의 재전송에 의한 안정적 수익 창출에만 연연하지 말고,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콘텐츠 산업에 적극 투자해야 한다. 초고속인터넷 혁명의 결실인 세계 최고의 IT 인프라를 바탕으로 다양하고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 우리나라가 실질적인 IT 강국으로 재도약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한다.
통신과 방송의 융합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유기적 결합에 따른 시너지를 창출해 IT 산업의 재도약과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앞당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통신사업자들이 자유롭게 통신·방송 융합을 추진할 수 있도록 제도적 환경 조성에 보다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윤창번 하나로텔레콤 사장 cbyoon@hana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