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HP를 쪼개라고?

부진만회 실적에도 불구하고 분사설이 다시 고개..

휴렛패커드(HP)를 컴퓨터 기업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이들은 “HP를 잘 안다면 결코 HP를 컴퓨터 기업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유가 있다. 바로 HP의 최대 효자 상품은 프린터 관련 제품이지 PC·서버·스토리지 등 컴퓨터 관련 제품이 아니라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이는 수치상에서도 잘 드러난다. HP의 프린터&이미징 사업은 HP 전체 영업이익에서 무려 76%나 차지하는 알짜 분야다. 반면 스토리지, 서버 등 기업용 컴퓨터 제품은 수익률이 겨우 1.1%에 불과하다. 시장이 성숙한 개인용컴퓨터(PC)는 더하다. 1%가 채 안 된다. 한마디로 HP를 먹여 살리는 것은 프린터&이미징 사업이지 컴퓨터가 아니다. 이러니 HP가 컴퓨터 기업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의 말은 확실히 일리가 있다.

 돈냄새 맡는 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월가 애널리스트들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이 때문인지 최근호 비즈니스위크지에 따르면 월가 애널리스트들은 HP에 프린터&이미징 부문을 컴퓨터에서 분리하라고 압박을 가하고 있다.

 메릴린치의 저명한 애널리스트인 스티븐 밀루노비치는 “만일 HP가 프린터&이미징 사업을 분사한다면 기업가치가 25∼45% 정도 오를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HP의 대형 기관투자가도 “순전히 프린터 사업 때문에 HP주를 가지고 있다”면서 HP에 압력을 넣고 있다.

 하지만 ‘큰 게 좋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 칼리 피오리나 HP 최고경영자(CEO)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분사설을 일축하고 있다. 그는 오히려 소프트웨어와 서비스 사업 강화를 위해 관련 기업을 인수하겠다는 팽창 전략을 내비쳤다. 소프트웨어의 경우에는 베리타스, 서비스 기업은 캡제미니 미국 지사를 유력한 피인수 후보로 거론하고 있다.

 최근 HP는 그동안의 부진을 만회하는 실적을 발표, 분사설을 잠재우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실적이 나빠진다면 분사설이 다시 고개를 들 것이다. 세계 최고 여성 CEO와 월가 애널리스트들이 벌이는 기 싸움에서 누가 승리할지 흥미진진하다.

 국제기획부 방은주차장@전자신문, ejb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