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불황일수록 `가치`를 팔자

우리 속담에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이 있다. 뒤집어서 말하면 ‘가격이 비싼 제품이 품질도 좋다’ 는 말이 된다. 정말 그럴까.

 캐나다 앨버타 주의 시장조사기관인 DCCA(Department of Consumer and Corporate Affair)는 33년에 걸쳐 975개 제품의 판매가격과 품질의 상관관계를 조사한 적이 있다. 발표 내용에 따르면, 제품의 품질과 가격은 상관관계가 없지 않지만 밀접도는 높지 않다고 한다. 상관관계가 완전할 때를 100%로, 그 반대를 0%로 했을 때, 제품과 가격의 밀접도는 25% 정도라는 것이다. 오히려 가격이 높으면서도 품질이 좋지 않은 정반대의 경우도 25%에 이른다고 하니, 제품 가격으로 품질을 평가하는 것은 중대한 오류라고 본다.

 기업이 제품 가격을 책정하는 것을 ‘가격전략(Pricing Strategy)’이라고 한다. 전통적인 마케팅 요소인 4P 중 하나로, 시장환경이 바뀌어도 마케팅에서는 여전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가격을 책정하는 방식에도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 과거에는 상품 가격을 공급자인 기업이 결정했다. 기업은 원가에 이익을 합쳐 가격을 정했고, 소비자는 그 결정에 순응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소비자가 상품 가격을 결정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소비자는 상품을 구입할 때 기업이 투입한 원가를 고려하지 않는다. 오직 그 가격에 어울리는 가치를 가진 상품인가를 판단할 뿐이다.

 일례로 도요타의 코로나 자동차와 컬러TV의 가격 변화를 보면 알 수 있다. 25년 전 코로나 자동차의 가격은 불과 2500달러 수준이었다. 당시 29인치 컬러TV 가격도 그와 비슷했다. 하지만 지금 코로나 자동차는 10배나 오른 2만5000달러에 판매되고 있고, TV는 그보다 훨씬 낮은 가격으로 떨어졌다. 소비자는 2만5000달러를 주고도 코로나 자동차를 살 만하다고 생각하지만, 범용 상품인 컬러TV에서는 그만큼의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둘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지만, 가격에 대한 판단 기준은 생산원가가 아니라 상품에 대해 소비자가 느끼는 가치에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는 ‘가치 있는 상품’은 언제든지 시장에서 대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한국산 휴대폰과 가전제품이 해외 곳곳에서 막강 브랜드 파워를 가진 세계 유수 기업의 제품보다 더 비싸게 팔리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얼마 전 LG전자가 극심한 불황 속에서도 8000만원에 이르는 세계 최고가의 PDP TV를 출시해 화제가 됐다. 국내 최고급의 승용차보다 높게 책정된 가격 때문에 우려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시장의 반응은 기대 이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사실 최고급 승용차보다 비싼 고가의 TV를 판매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자동차는 TV보다 비싸다’는 고정관념이 상식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비자의 욕구에 부합하는 구매가치를 갖추기만 한다면 이런 고정관념은 얼마든지 깨지기 마련이다. ‘가치’는 가격 자체가 만들어내는 경우도 있고 광고나 브랜드 이미지에 의해서 생성되는 경우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상품에 내재한 기술과 성능이다.

 요즘 우리 경제가 장기침체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어려움을 겪는 기업이 늘고 있다고 한다. 어려운 상황일수록 우리는 ‘고객가치’를 높이는 데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상품은 소비자를 위해 만드는 것이지 기업의 매출만을 위해서 만드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기업이 만든 상품들이 최고의 가치를 창출해서, 어떤 불황 속에서도 소비자들에게서 사랑을 듬뿍 받는 명품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우남균 LG전자 사장 namwoo@lg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