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 이후 북한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이라크 전쟁 이후 미국이 손볼 대상이 이란이냐 아니면 북한이냐 하는 데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부시 재선 이후 이란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결의안을 받아들여 ‘핵개발 전면 동결’을 선언함으로써 이제 남은 대상은 북한으로 좁혀졌다. 북핵문제의 조기해결을 위한 우리 정부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나서 북한의 핵개발 의도를 설명하고, 북핵문제 해결을 최우선과제로 하여 이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북한은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장기 생존하느냐 아니면 지속적인 갈등으로 인한 위기의 심화냐 하는 갈림길에 서 있다. 북한은 세계적 노동분업구조 속에서 누릴 수 있는 기술혁신과 정보· 지식의 유입이 차단돼 구조적이고 만성적인 경제난을 겪고 있다. 경제성장의 둔화로 중국의 개방 경험을 원용해 1984년 합영법을 제정하고 대외개방을 추진했으나, 대외개방이 후계체제 구축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지나친 우려 때문에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1990년대 초부터 북한은 자본주의체제에 편입하지 않고는 심각한 경제난을 벗어날 수 없다는 인식 아래 나진· 선봉에 특구를 설치하고 외국자본 유치에 나서면서 일본 ·미국 등 서방국가와 관계개선을 서둘렀다. 그러나 북한은 개방에 따른 체제 부정의식 확산에 대한 우려와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WMD) 개발 의혹이 불거지면서 개방을 본격화하지 못했다.
북한이 미 대선 이후 미국의 차기정부와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면, 군사 우선의 선군정치를 뒤로 하고 경제우선의 개혁·개방 조치를 본격화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게 될 것이다. 핵문제 해결과 함께 미국, 일본 등 서방국가와 관계를 정상화할 경우 북한은 ‘불량국가’에서 ‘정상국가’로 변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9·11테러 이후 미국의 반테러와 대량살상무기 비확산에 대한 의지가 워낙 확고해 북핵문제 해결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핵 동결 대 보상의 동시행동과 안전보장 등을 미국에 요구하고 있지만, 미국은 리비아 방식의 ‘선 핵폐기’가 전제돼야 관계개선을 위한 대화에 응할 수 있고, 핵 폐기에 대한 대가 또한 없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북·미 갈등이 지속 되면 남북의 경협 활성화 등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핵 문제 해결이 어렵고 미 ·일 등 서방세계의 대북 압력이 가중될 경우, 북한은 선군정치를 지속하면서 중국, 러시아 등 전통적 우방과의 관계를 밀접하게 유지하며 ‘근근이 버텨내기(muddling through)’를 지속할 것이다. 미국이 북한위협론을 내세우면서 중· 러를 겨냥한 미사일방어(MD) 체제구축을 강행할 경우 동북아정세는 ‘신냉전질서’로 회귀할지도 모른다. 핵문제를 조기 해결하지 못하고 체제위기가 지속되면 김정일 정권의 지도력에 균열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고난의 행군’을 지속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이 개선되기는커녕 미래의 불확실성만 커질 경우 북한 주민은 좌절하게 될 것이다.
요즘 대북사업이 전처럼 활기를 띠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그 동안 우리 기업들, 특히 IT기업들이 앞장서 추진해 오던 사업들이 북한의 여러 가지 정치적인 이유로 진전을 보지 못하고 주춤거리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 북한은 과감하게 핵을 포기하고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해 남한과 경제 협력을 강화하는 길을 열어 놓아야 한다. 이것이 우리 민족이 공생 번영의 길로 가는 유일한 대안이다. 정치적인 문제를 핑계삼아 순수한 민간의 IT교류까지 발목을 잡는 것은 북한 스스로 자신의 발목을 잡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내부 자원이 고갈된 북한이 살 수 있는 길은 오직 개혁·개방뿐이다. 이것이 역사의 진리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yhkoh@dongguk.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