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의 극심한 정쟁으로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가 끝내 공전, 초미의 관심을 끌어왔던 각종 과학기술 현안 상정이 이번 임시국회에서도 무산될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한다. 과학기술 정책마저도 비생산적인 정치 논리에 발목이 잡혀 있는 꼴사나운 모습을 보면 IT를 활용해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앞당겨 열자는 ‘과기한국 건설’ 구호가 무색할 지경이다. 말로는 민생정치를 앞세우면서도 상대방의 말꼬리를 잡는 소모적인 정쟁으로 갈 길이 바쁜 과기 한국의 행보에 딴죽을 거는 행위는 그 어떤 명분을 내세우더라도 결코 용납될 수 없을 것이다. 임시국회가 열려도 계속되는 색깔공방으로 중요 현안의 상정 자체가 무산되고 파행 운영되는 현실을 볼 때 정치인들이 과연 지금의 위기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것인지 안타깝기만 하다.
이번 임시국회에는 내년도 예산안을 포함, ‘대덕연구개발특구육성에관한특별법(대덕R&D특구법)’ 등 더는 처리를 늦추면 곤란한 우리 과학 기술계의 현안들이 산적해 있다. 하지만 이 같은 현안 대부분이 여야의 타협 없는 대립으로 위원회에 상정도 되지 못한 채 시간만 허비하고 있다니 안타깝고 답답한 일이다. ‘대덕R&D특구법’의 경우만 하더라도 일부 지역구 의원들의 반대 때문에 불필요한 소모전만 되풀이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당에서는 “법정 시한을 감안할 때 이번 주말 또는 주중에 표결 처리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장담할 수 없는 노릇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술개발촉진법 개정안 △우주개발진흥법 제정안 △비파괴검사기술의 진흥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정안 등 예고된 각종 입법안의 법제화가 줄줄이 늦춰져 내년도 과기정책의 향방마저 알 수 없게 됐다.
내년도 예산안 처리 문제도 당장 발 등에 떨어진 불이다. 증액이냐 감축이냐를 놓고 여야가 감정 섞인 줄다리기만 계속 하고 있으니 내년도 사업계획을 세워놓고 있는 행정 담당부처로서는 답답하고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예산이 확정돼야 구체적인 정책 실행 플랜을 마련해 사업을 추진할 터인데 정쟁 때문에 손놓고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발전 프로젝트 200억원을 포함, 나노 종합 팹 구축사업 172억원, 특수연구소재은행사업 104억원 등 굵직굵직한 기초과학 사업예산들이 국회에 계류중이기 때문이다.
우리 국회가 새해 예산안을 정쟁의 볼모로 삼았던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어서 새삼스러울 것까지는 없지만 17대 국회에서도 이런 구태가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은 여간 부끄럽지 않다. IT산업 활성화를 위해 그동안 여야가 내놓은 각종 대책도 모두 사탕발림의 정치적 수사였단 말인가.
정치권의 싸움에 넌더리가 나 이제 더는 뭐라고 말하기도 싫다. 하지만 싸움을 하더라도 국가의 주요 현안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고 공통분모를 찾아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것이 국민을 대표한다는 국회의원이 반드시 가져야 하는 최소한의 양심이고 덕목이다. 행정 부처 고위직 간부들이 업무 공백을 감수하고 하루가 멀다 하고 국회에 진을 치고 앉아 법안 통과를 학수고대하며 진을 빼는 씁쓸한 풍경은 사라져야 한다.
정치권에 발목이 묶인 각종 민생 현안, 특히 IT 관련 법안들은 우리의 미래가 걸려 있는 중요한 안건이다. 결코 정쟁의 볼모가 되어서는 안 되는 핵심적인 민생 현안인 것이다. 미래의 식탁인 ‘IT 먹거리’를 차려놓고 싸움만 벌이는 추태는 이젠 제발 접어야 한다. 올바른 국가 정책에 국회가 힘을 실어주지는 못할 망정 이런 식으로 흠집을 내서는 안 된다. ‘과기 한국’은 정쟁의 도구나 정치 구호가 아닌 절체절명의 ‘생존 화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