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통신표준화기구(ETSI)가 내년 상반기 중 최종 규격 승인할 지상파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T-DMB) 표준안이 당초 우리나라가 제안한 규격 중 일부 내용의 변경은 물론, 다른 대안 규격도 함께 채택할 전망이어서 파장이 예상된다.
유럽 디지털오디오방송(DAB) 및 DMB 표준 제정과 관련한 전권을 가진 월드DAB포럼이 이달 초 기술위원회를 통해 결정한 ‘DAB 프로토콜 스텍’에 따르면 이른바 한국형 T-DMB로 일컬어지는 ‘인헨시드 스트림모드’ 외에 ‘인헨시드 패킷 모드’ ‘MPEG TS 모드’ 등 두 가지 다른 규격이 함께 채택된 것으로 15일 확인됐다.
특히 우리나라가 제시한 ‘인헨시드 스트림모드’가 ‘BSAC’를 단독 오디오 규격으로 정한 데 비해 월드DAB포럼 측은 ‘AAC+’를 복수 채택해 국내 독자 규격은 유럽 시장에서 외면당할 개연성이 제기됐다. BSAC은 삼성전자가 제안한 규격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유럽 사업자들이 우리나라가 제시한 아이디어인 ‘DAB에 바탕한 실시간 AV 서비스’를 받아들이면서 실상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가공해 우리로선 실익을 얻지 못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유럽 DMB 표준 승인 과정=월드DAB포럼은 이달 말 총회를 개최하고 기술위원회가 제안한 규격을 승인한 후 이를 내년 1월 ETSI에 제안할 계획이다.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의 관계자는 “ETSI 내 검토를 거쳐 통상 6개월 안에 유럽 표준으로 확정되며 지상파DMB의 경우 이르면 3월 말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단, 유럽 유일 규격은 아니며 노키아 진영의 DVB-H도 표준으로 승인받을 것으로 보여 경쟁이 불가피하다.
◇‘인헨시드 패킷 모드’와 ‘MPEG TS 모드’=월드DAB포럼 기술위원회가 제안한 안에는 스웨덴 레디오가 제시한 ‘인헨시드 패킷 모드’와 독일 보시사가 제안한 ‘MPEG TS 모드’가 포함돼 있다. 특히 인헨시드 패킷 모드의 경우 유럽 DAB방송 사업자들이 제공중인 기존 데이터 서비스를 지원할 수 있는 호환성을 갖추고 있다.
우리가 제시한 스트림 모드 방식은 실시간 방송을 가능케 하기 위해 대역폭을 항상 유지시켜야 하는 반면, 인헨시드 패킷 모드는 3초 정도 지체되는 단점이 있으나 패킷을 보내기 때문에 효율성 측면에서 유리하다.
◇‘AAC+’ 대두=당초 한국형 T-DMB 규격의 주요 특징으로 거론된 점은 삼성전자의 ‘BSAC’을 오디오 규격으로 채택한 대목이다. 월드DAB포럼은 그러나 독일 방송국인 IRT의 제안을 받아들여 ‘AAC+’를 복수 규격으로 인정했다. AAC+는 국내 위성DMB 규격에도 채택되는 등 전세계적으로 세 확산에 나선 대표적인 오디오 규격이다.
업계 한 전문가는 “유럽의 경우 디지털FM인 DAB뿐만 아니라 디지털AM인 DRM(Digital Radio Mondiale)이 내년 상용화에 나설 예정인데 DRM은 AAC+를 채택하고 있다”며 “상당수 DAB 사업자가 DRM 서비스도 겸하는 상황에서 AAC+가 BSAC을 압도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BSAC을 채택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독일 일부 사업자가 AAC+를 선호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국형 T-DMB는 어디로=업계에선 결국 유럽 사업자들은 자신들의 입맛대로 T-DMB를 구성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또한 원천 특허의 경우 유레카147, TPEG2 TS 디먹스 등 T-DMB 수신기 대당 7달러 이상이 해외 업체로 흘러나가는 구조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정보통신부나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등이 한국형 T-DMB의 유럽 표준 채택에 들떠 있는 상황이 문제”라며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유럽 시장 변화에 맞춰 이에 대응하는 칩세트나 단말기를 개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성호철기자@전자신문, hcs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