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의 고정관념이 깨지고 있다. 업무 처리 용도에서 디지털 환경을 즐기는 종합 엔터테인먼트 기기로 탈바꿈중이다.
사용 장소도 공부방·서재에서 안방·거실로 옮겨가고 있다. 디자인도 사각형의 딱딱하고 투박한 형태에서 오디오 등 일반 가전제품과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세련돼졌다. 키보드와 마우스도 필요없다. TV처럼 리모컨으로 작동하면 그만이다. 이제 PC는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기능으로 무장하면서 디지털 멀티 가전 영역까지 넘보는 상황이다.
안방 반란의 주역이 바로 ‘미디어센터PC’다. 미디어센터PC는 한마디로 가정용 오디오·비디오 기기 기능과 고성능 컴퓨터 기능을 하나로 통합한 제품이다. 처음 선보인 때는 지난 2002년이지만 그저 성능이 좀 뛰어난 컴퓨터의 수준을 넘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마이크로소프트(MS)가 전용 운용 체계(OS)인 ‘미디어센터 에디션(MCE) 2005’를 선보이고 인텔이 ‘하이퍼 스레딩(Hyper Threading)’ 기술을 기반한 칩세트를 통해 무게를 실어 주면서 미디어센터PC 개발이 활기를 띠고 있다.
홍봉룡 삼보컴퓨터 연구소장은 “과거 PC는 주로 e메일과 인터넷, 문서 작업이 목적이었다”며 “컨버전스 시대에는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고, 게임을 즐기는 등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기기로 탈바꿈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미디어센터PC의 가장 큰 강점은 역시 홈 엔터테인먼트 기능이다. PC 한 대만 있으면 오디오·VCR·DVD플레이어 기반의 홈 시어터로 활용할 수 있다. 튜너까지 내장해 TV도 시청할 수 있다. 공중파 방송은 물론 케이블TV와 유선·위성·디지털 방송까지도 자유자재로 즐길 수 있다. 리모컨으로 간편하게 조작하면 되므로 일반 TV를 보는 것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빵빵한’ 하드디스크 용량으로 DVD리코더처럼 TV 프로그램을 마음껏 녹화할 수 있다. ‘무늬만 PC’지 사실 디지털 가전제품과 구분하기 힘들다.
마니아도 탄복할 만큼 사운드도 돋보인다. 현장감을 살리는 5.1채널 지원은 기본이고 카메라의 앵글과 더빙한 음성 언어, 자막 선택, 화면 비율까지 설정할 수 있다. 가수·장르·제목별로 음악 파일을 정리하고 수많은 파일 가운데 원하는 곡을 바로 찾을 수 있는 검색 기능도 제공한다. 영어 회화 프로그램 등 원하는 파일을 저장해 두었다가 틈틈이 반복해 들을 수 있어 어학 공부에도 도움이 된다.
생활필수품으로 자리잡은 디지털 카메라 기능도 몇 배 더 높일 수 있다. 디카로 찍은 사진을 쉽게 관리하고 리모컨으로 앨범을 넘기듯이 편하게 디지털 사진을 감상할 수 있다. 일반 소규모 극장과 같은 환경에서 영화를 즐길 수도 있다.
이미 주요 PC업체는 발빠르게 미디어센터PC를 내놓고 안방 공략에 시동을 걸었다. 삼보컴퓨터는 최근 선보인 미디어센터PC ‘드림시스 AAU 632’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삼보는 이 제품을 내놓으면서 아예 오디오·비디오 (AV) 기능과 디지털 컨버전스를 제품 컨셉트로 잡았다. 영화와 음악 등 멀티미디어 기능을 마치 오디오 기기를 조작하듯 리모컨 하나로 즐길 수 있도록 꾸몄다. 이 때문에 디자인에서 편의성까지 가전 개념을 본격적으로 도입한 제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LG전자와 삼성전자도 거실을 겨냥해 ‘홈 엔터테인먼트 PC’를 모토로 다양한 모델을 선보였다. 이들 제품은 TV 수신은 물론 선 없이 무선랜을 사용할 수 있도록 접속장치(AP)까지 내장하고 있다.
이 밖에 주연테크 등 중견 PC업체는 물론 용산 조립업체까지 가세하고 있어 내년 PC시장은 미디어센터가 대표 제품으로 부상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홍구 한국HP 부사장은 “시장의 흐름이 PC를 중심으로 한 멀티미디어 환경으로 급속하게 바뀌고 있다”며 “지난 20년 동안 책상 위에 있던 PC가 거실로 옮겨가면서 그 역할도 ‘홈 엔터테인먼트’로 재정립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강병준기자@전자신문, bjk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