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사회’라는 단어는 이제 초등학생 조차도 낯설어 하지 않는다. 불과 10여년 사이의 변화다. 역기능 및 순기능 관련 내용 역시 빈번한 기사거리가 된 지 오래다. 이처럼 정보사회와 관련한 이야기들이 우리 사회에 보편적으로 자리한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정보가 가지고 있는 ‘힘’ 때문일 것이다.
정보사회에서 정보는 수집하고 이용하는 사람에게는 힘의 원천이지만, 제공하는 개인으로서는 보호해야 할 대상이다. 철학자 미셀 푸코는 저서 ‘감시와 처벌’에서 컴퓨터망과 데이터베이스가 일종의 집중적 감시체계인 ‘팬옵티콘(Panopticon)’을 구성한다고 주장했다. 또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에 관한 데이터베이스가 전체주의적 권력의 도구로 잘못 사용될 가능성과 힘에 주목했다.
푸코의 주장이 편향된 디스토피아적 관점이란 지적도 있지만, 정보와 개인 그리고 그 이용에는 반드시 힘이 개입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오늘날 힘이 갖는 의미는 어떤 것일까. 전체주의적 권력이니 정보감시니 하는 조금은 거창한 담론을 접어두고 생각해보면 그 힘은 ‘경제적 이익’과 ‘피해’와 밀접하다.
사법당국은 인터넷에 유통되는 개인 정보가 2000만개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고 발표한 적이 있다. 이는 개인 정보 유출이 경제적 손실은 물론 사생활 노출로 인한 폐해까지 야기할 수 있는 위험수위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다.
개인의 경제적 손실과 연결된 사회 문제들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불법 수집된 정보를 이용해 1만5000여개의 유령ID를 만들고, 사이버 머니 1318경원(시가 1647억원)을 유통한 이들이 구속되기도 했다.
이른바 피싱(Phishing) 수법으로 e메일 ID와 패스워드를 알아내고 이를 매매한 혐의로 10여명이 붙잡히기도 했다. 이런 일은 결국 개인뿐 아니라 기업의 경제적 손실과도 연결된다. 수많은 스팸메일은 필연적으로 과도한 트래픽 증가를 수반한다.
하지만 인터넷이라고 무한정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은 아니어서 기업 또한 피해를 본다. 그래서 트래픽을 증가시키는 불법 사용자에게 더 많은 요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렇듯 개인 정보의 불법적인 이용과 피해는 피해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개인 정보를 보호하고 대책을 수립하는 데는 개인과 관련 기업, 단체는 물론 나아가 범사회적 차원의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
안전하게 인터넷을 사용하는 방법을 체득하고 자기 정보를 통제하는 힘을 기르는 것은 개인의 몫이다. 경품 당첨이나 설문조사를 미끼로 카드나 주민번호 등을 요구하는, 발송자가 의심스러운 스팸메일을 삭제하고 신고하는 노력이 그 작은 시작이다. 관련기관과 단체들도 정보보호의 실질적인 방법과 이해의 필요성을 더욱 확산시켜야 한다.
필자는 정보화 시대에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것은 정보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기술을 향유할 수 있는 문화적 힘이라고 믿는다.
아울러 그 힘은 풍부하고 폭넓은 담론에서 시작된다는 믿음 또한 확고하다. 이러한 믿음 아래 필자가 소속된 재단에서는 해마다 공모를 통해 ‘정보통신문화신서’를 발간,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이를 통해 안전한 정보통신 문화를 확산시키고 결국은 풍요로운 정보통신문화를 꽃피우리라는 믿음에서다.
현대 정보사회에서 개인정보는 판도라의 상자와 같다. 상자를 열고 싶어했던 호기심에서 비롯된 신화 속 인간의 고통은 언제든 불법 개인정보 유출로 피해를 받을 수 있는 우리 자신과 친구, 가족의 모습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정태원 KT문화재단 이사장 ctwon@ktcf.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