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뇌물수수혐의로 구속된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조모 씨의 선임에 직간접적으로 간여했던 한 고위 인사는 사건 발생 후 착잡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럴 사람이 아니었는데...”라고 얼버무렸지만, 이는 심의위원이 위촉 과정에서 비교적 철저한 도덕성 검증을 거쳤다 하더라도 ‘로비 타깃’으로 쉽게 노출될 수 밖에 없는 영등위 운영상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대변해주는 말이기도 하다.
현행 ‘음반·비디오 및 게임물에 관한 법률’ 제7조 2항에는 영등위원 자격이 대한민국 예술원 회장의 추천에 의해 대통령이 위촉하는 자로 규정돼있다. 따라서 청와대까지 관여되는 인선 과정에서 이른바 도덕성·공정성을 상실한 인물이 심의위원이 되는 것은 논리적으로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같은 법 제15조 1항에는 ‘선임된 위원은 임기중 직무상 어떠한 지시나 간섭을 받지 아니한다’고 못 박는 역설적인 내용이 있다. 선임 이후에는 사실상 ‘면책’에 가까운 지위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등급분류를 곧 수익 획득의 범위로 받아들이는 게임업체로선 자연스레 영등위원들과의 ‘줄’을 대기 위해 안간힘을 쓰게 된다.
영등위의 소위원회(분과위원회)에서 해당 게임물에 전체이용가 분류만 받아내면, 그 결정은 거의 바뀔 수 없는 ‘영업특혜’로 작용하게 되고, 반대로 별다른 하자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18세이용가 등급을 받게 되면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다.
이에 전문가들은 분기 또는 반년마다, 등급분류가 이뤄진 게임과 등급결과 및 해당 위원을 전문적으로 사후 품평할 수 있는 공개적인 토론구조를 만들어야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공정성이 이미 심각하게 훼손된 상황에서 지금과 똑같은 심의 및 등급방식을 그대로 유지해서는 게임업계와 이용자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정 임기 및 지위에 대한 보장도 좋지만 위원 스스로가 자기 역할에 대한 자정 노력을 게을리 할 수 없는 운영구조를 만들어야할 필요도 제기된다.
위원들은 현재 2년 임기(1년 연임기간 포함)로 위촉되지만 7개 소위원회를 번갈아가며 활동하다 보면 ‘간섭 없는’ 임기가 보장되는 것이다. 실제 이번에 구속된 조모 씨의 경우 지난 2년 동안 게임물등급위 소위원회 위원장을 맡다가 지난 6월 비디오등급소위 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겨 앉은바 있다. 이에대해 전문가들은 1년 임기후 총체적 활동 평가를 거쳐, 타 소위원회 재선임이라는 역할이 주어지는게 마땅하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 10월에 열렸던 ‘게임산업진흥법’ 제정 공청회에서 영등위 측은 심의 및 등급기구의 성격 및 운영방식에 대해 강한 불만을 제기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영등위에 대한 대대적 수술 없이는 현 영등위의 주장이 새로 제정될 법에 고스란히 반영되기는 힘들게 됐다.
이진호기자@전자신문, jho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