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도계의 수은주가 뚝 떨어졌다. 그렇지만 옷깃을 여미는 행인들은 쌀쌀한 날씨보다는 좋아질 줄 모르는 경기상황 때문에 더 많은 걱정을 하고 있다. 세밑의 흥분이나 분주함을 찾아보기 어려운 요즘이다. 그러나 한파가 혹독할수록 이를 헤치고 피어나는 야생화가 더 많은 감동을 주듯이 내년 이맘 때면 경제가 완연히 회복돼 지금의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회고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따뜻한 디지털’이라는 다소 생경한 단어가 최근 지면에 등장했다. 가장 이성적이어야 할 디지털이 따스한 온도를 지닌다는 것은 일견 이해하기 힘든 일 같다. 하지만 디지털로 무장된 IT가 새로운 수요창출로 우리 경제에 화색을 돌게 할 것이라는 믿음은 예전과 다르지 않다.
경제뿐 아니다. 최근 통신이나 컴퓨터, 소프트웨어 업체 등 다양한 IT기업의 잇단 선행이 사회 전반에 온기를 불어넣고 있다. 단순한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소외받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지속적인 사랑이 연일 지면을 통해 소개되고 있다. 예전 같으면 묻혀버릴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IT기업들의 선행이 돋보이는 것은 그만큼 사회가 각박해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를 세계 시장의 하나로만 인식할 것으로 여겨졌던 다국적 IT기업들의 선행도 우리 기업 못지않다. 세계 제1의 사회공헌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를 비롯해 IBM이나 HP, 오라클 등 수많은 다국적 IT기업의 한국지사는 지원 규모나 횟수에서 오히려 우리 기업을 훨씬 능가하고 있다. 일부는 한국에서 이미지를 높이기 위한 마케팅 전략 차원이라고 폄하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IT산업을 이끌어가는 한 축인 그들의 순수한 마음과 노력을 애써 외면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2004년이 며칠 남지 않은 지금, 경제를 회복시켜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풀기 위해 눈이 팽팽 돌아갈 정도로 앞만 보고 달려왔던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자. 그리고 경기침체로 사업을 접어야만 했던 동료 IT기업인을 위로하고 다시 뛸 수 있도록 그들을 격려하는 시간을 갖는 것은 어떨까. 바깥은 삭풍이 몰아쳐도 IT산업계에는 온기가 전해지는, 그런 따뜻한 연말을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양승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