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를 대표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차기 회장으로 이건희 삼성 회장을 추대하기로 결정했다. 강신호 전경련 회장은 지난 22일 밤 기자간담회에서 이 회장을 설득하기 위한 카드로 ‘행사담당 수석부회장 제도 신설’을 내놓았다. 그는 또한 “‘수술(1999년) 후 5년 안에는 안 된다’고 말한 시한이 지났다”며 압박하기도 했다.
전경련의 확실한 ‘목소리’ 역할을 해온 삼성 출신 현명관 부회장도 이 회장이 수락한다면 언제라도 떠날 준비가 돼 있다는 입장이다.
전경련이 이 회장을 차기 회장으로 추대하기 위해 큰마음을 먹은 것 같다. 단순한 러브콜 정도가 아니다. ‘이 회장이 아니면 안 된다’는 식이다. 우리나라 재계 빅3 중 나머지 둘인 구본무 LG 회장과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무색할 정도다.
전경련의 이 같은 움직임이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 재계를 대표하는 전경련의 목소리가 제대로 정책에 반영되지 않는 등 위상이 날로 추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전경련 무용론’까지 흘러나오고 있으니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전경련의 이런 밀어붙이기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오는 것이 아닐지 우려된다. 이 회장이 차기 회장직을 수락한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고사’ 입장을 고수할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전경련 회장과 고문단이 이 회장을 추대하겠다고 밝힌 시점에서 어느 누가 선뜻 회장직을 받아들일 것이며 또한 수락했다 한들 그 위상과 권위는 얼마나 떨어지겠는가.
전경련은 이 회장이 수락하지 않을 것에 대해 전혀 준비를 하고 있지 않다. 전경련의 한 고위 관계자는 “그때(이 회장 고사시) 가서 생각해도 늦지 않다”며 문제 될 것이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전경련은 한국 대표기업의 집단이다. 기업은 때론 과감한 공격경영을 펼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미리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 이 회장은 명확한 태도를 밝히지 않고 있지만 아직 ‘고사’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무리 수장을 정하기 어렵다고 해도 경제단체의 어른을 모시는 방식이 좀더 세련된 모양새를 갖춰야 하지 않을까. 사족을 붙이자면 누가 수장을 맡든 전경련 회장이 계속 ‘억지춘향 격 자리’라는 인상을 주는 것도 볼썽 사나운 일이다.
김준배기자@전자신문, j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