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공계 `IT 맞춤교육` 환영한다

삼성전자 등 9개 국내 주요 IT기업 CEO와 서울대 등 11개 대학 공과대학장들이 한자리에 모여 대졸 ‘IT인력의 전공역량 혁신’을 위한 산·학 공동 선언문을 채택했다. 주요 내용은 IT기업이 신입 사원 채용 때 전공능력을 최대한 입사 성적에 반영하고, 대학도 산업 현장에서 곧바로 활용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교과과정을 개편하는 등 ‘맞춤교육’을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비록 강제 사항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이공계 교육 강화와 ‘현장형 IT두뇌’ 양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면에서 이번 선언은 큰 의미가 있다.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디지털시대에는 인력 양성에 국가 경쟁력이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국이 고급 두뇌 양성에 국가적 차원에서 경쟁적으로 거액을 투자하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하지만 이 같은 세계적인 흐름과 대조를 보이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틈이 날 때마다 말로는 첨단산업 분야가 몇 년 내 얼마만큼 필요하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기업은 대학에, 대학은 기업에 책임만 전가할 뿐 인재 양성을 위한 구체적인 프로그램 수립엔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다. 소극적으로 일관했던 산· 학이 이번에 IT 공학인력 양성 프로그램을 마련한 것은 오랜 만에 보는 흐뭇한 협업 장면이다. 산업체가 직종별 기술능력 기준을 제시한 것도 그렇고, 이를 교과에 반영하고 객관적 검증을 위해 ‘공학교육인증’을 도입하겠다고 화답한 대학 모두 상생의 모범답안을 제시했다고 본다.

 그 동안 기업들은 공대 출신을 뽑아도 당장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인재가 모자란다고 볼멘소리를 해왔다. 대졸 IT인력의 전공 능력이 기업 요구 수준의 26%에 불과해 현장에 배치하기 위해 30여개월 기초 직무 교육을 하는 등 낭비적 요소가 많다는 것이 불만이었다. 일견 일리가 있지만, 기능공 양성소가 아닌 공과대학에 기업들의 입맛대로만 맞춰달라고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문제의 핵심은 대학보다 기업들의 신입사원 채용 방식에 있다. 기업들의 신입사원 채용 시험을 보면 공과대학 출신들에게 요구하는 답이 특성화된 전공과 동떨어진 것이 너무 많다. 공과대학 출신에게 산업 현장이나 기술 흐름에 대한 문제보다는 시사나 상식 등 인문계 학생들에게나 필요한 엉뚱한 답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다 보니 대학이나 학생들로서는 기업의 요구사항을 맞출 도리밖에 없었던 것이다. 전공 공부에 소홀했던 까닭에 운 좋게 입사했더라도 기업 쪽에서 보면 유용가치가 없어 보이는 등 당연히 모순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공과대 졸업생이라 해서 인문학적인 소양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업의 채용방식이 알게 모르게 공과대학 교육의 왜곡을 부추긴 면도 적지 않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디지털시대의 첨단기술은 라이프 사이클이 짧아 인력 공급이 제때 순발력 있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경쟁에서 뒤처지게 마련이다. 이번 모임은 모처럼 인력 공급자인 대학과 수요자인 기업이 머리를 맞대고 허심탄회하게 문제의식을 공유, 선 순환적 IT 공학인력 수급체계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받을 만하다. 비록 선언 단계이긴 하지만 이 같은 분위기가 확산되고,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겨진다면 기업과 국가의 경쟁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공과대학 교육 강화와 IT인력 양성은 물론, 이번 선언을 계기로 산·학 관련 대표들이 모여 IT현안에 대한 생산적인 해법을 찾는 모임들이 늘어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