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을 ‘벤처기업 부활의 원년’으로 만들기 위한 정부의 신벤처 정책이 확정됐다. 이번 벤처기업 활성화 대책은 벤처기업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조성’에, 즉 벤처생태계 중 자금 흐름을 원활히 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으로 바람직한 결정으로 여겨진다. 거래소와 코스닥시장의 차별화, 코스닥종목 가격제한폭 확대, 인수합병제도 개선을 통한 구조조정과 대형화 유도 등이 그것이다. 미국식 벤처정책인 실패한 벤처기업인에 대한 재기 지원 대책 도입은 획기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특히 이번에 창업→성장→성숙·구조조정 등 단계별로 지원 대책을 제시한 것은 지원의 구체성과 실효성을 동시에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된다. 벤처 육성과 지원에 대한 정부의 시각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음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이번에도 자금 지원방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번 대책을 통해 내년부터 2008년까지 4년 동안 공급하기로 한 자금규모가 모두 11조9000억원이다. 매년 3조원에 달할 정도로 엄청나다. 하지만 정부가 기업을 직접 지원하지 않고 시장의 선순환을 위해 벤처캐피털 등으로 지원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어 높이 평가할 만하다. 게다가 벤처기업의 자본조성을 시장 참가자들이 자율적으로 판단, 결정할 수 있도록 시장기능을 강화하고 정부의 역할은 크게 줄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정부가 이 같은 특단의 대책으로 벤처기업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어 ‘제2의 벤처 붐’ 조성에 나선 것은 현재의 경제난국 돌파에도 상당한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물론 수익모델이 뚜렷하지 않은 벤처기업에 한국경제가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 제기될 수 있다. 하지만 벤처기업을 비롯한 기술형 중소기업 등 작고 강한 기업이 살아나면 한국경제의 활력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벤처기업 지원은 권장할 만한 일이라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중요한 것은 아무리 정부가 ‘벤처생태계 조성’에 주력한다 해도 벤처기업들의 도덕적해이(모럴해저드)가 계속되는 한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이다. 외환위기 이후 한때 국가경제의 상당한 활력소로 작용한 벤처기업이 지금처럼 고사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것은 한 마디로 일부 벤처기업과 경영자가 이를 ‘머니 게임’의 도구로 악용했기 때문이다. 벤처기업을 둘러싸고 연이어 터진 대형 사고는 투자자를 이탈시켜 결국 ‘고사 상황’을 불러온 것이다.
이런 부정적 인식이 남아 있는 한 정부와 벤처업계가 기대하는 시중자금 유치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제2의 벤처 붐을 조성하려면 정부 차원의 지원도 중요하지만 먼저 벤처기업과 기업인이 시장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벤처인 스스로 자체 정화를 서두를 필요가 있다. 비리와 도덕적 해이가 없는 상태에서 사업에 실패한 벤처기업 경영인이 벤처기업협회의 평가 등을 거쳐 기술신용보증기금 등의 지원을 받아 재기할 수 있게 해주는 이른바 ‘패자부활제’가 도입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물론 벤처업계가 정부의 활성화대책 발표와 함께 곧바로 성명을 내고 벤처인 스스로 사회적 신뢰를 얻기 위한 자정운동과 내실 다지기에 힘쓰기로 다짐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럽기는 하다.
이번 정부의 벤처기업 활성화 대책에 대해 2001년 이후의 ‘벤처거품’이 재연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시각도 많은 만큼 정부는 각종 부작용을 줄이는 대책 마련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벤처 붐을 조성할 경우 일시적으로 경기를 일으킬 수 있으나 그 악영향이 오래간다는 과거의 경험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과거 벤처신화 붕괴에 대한 철저한 반성 없는 벤처 활성화 정책 시행은 또 하나의 거품을 예고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