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의 하이테크업체들 `보릿고개`

실리콘밸리의 하이테크업체들의 지출 감소세가 시작된 지 4년 정도 지난 지금도 이곳 업체들은 매출 올리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약삭빠른 기업들은 매출에 필사적인 하이테크 기업들 간에 경쟁을 붙여 최신 장비와 서비스 가격의 대폭적인 인하를 유도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은 주문 쇄도로 고객들이 웃돈을 얹어야 장비와 서비스를 구입할 수 있었던 예전의 기술 호황기와는 완전 딴판이다.

업계의 한 분석가는 “기술 판매업체들이 빠르게 늘지 않는 먹이를 놓고 싸우고 있다”며 “모두들 원가 절감을 공격적으로 추진, 한 푼이라고 아끼려고 애쓴다”고 진단했다.

◇기술 투자에 소극적=특송업체인 페덱스의 연간 기술 예산은 이 회사가 지속적으로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몇 년째 13억 달러∼15억 달러 범위에서 움직이며 큰 변동을 보이지 않고 있다.

페덱스는 새로운 포장 화물 스캐닝 무선시스템인 ‘페덱스 파워패드’를 새로 설치하고 기존 페덱스 수퍼트랙커를 대체하기 위해 올해 1억5000만 달러를 투자했다. 이 회사는 사내 수요 조사, 입찰, 협상, 새 시스템 채택을 위해 5년 정도의 시간을 투입했다. 하지만 페덱스는 지난 번처럼 자체적으로 네트워크와 기기를 만들지 않고 최근 싱귤러에게 인수된 AT&T 무선 네트워크를 빌려쓰는 보다 저렴한 방법을 선택했다.

올 초 경기 반등이 시작된 이후 경제학자들은 기술 지출이 앞으로 12개월 동안 소폭 증가하는 데 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UCLA앤더슨예측연구소는 최근 보고서에서 기술 지출이 지난 90년대 말처럼 전광석화같진 않지만 그래도 매우 빠른 ‘정상적 성장 궤도’로 돌아왔다고 진단했다. 이 보고서는 아울러 경기 상승이 내년에 베이 지역 고용을 1∼2% 정도 늘리는 데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이코노미닷컴의 경제학자인 스티브 코크레인 박사는 기술 지출 증가율이 올해 14%에서 내년 1분기 9%, 2분기 5%로 둔화될 것으로 예측했다. 그는 지출 확대를 자극할 확실한 기술 혁신도 전혀 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시장조사회사 가트너는 기술 지출이 내년에 5%∼7% 정도 성장하는 데 그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CIO매거진의 게리 비치 발행인은 “기술시대가 시작된 첫 20년 동안은 기술 판매업체들이 모든 카드를 쥐고 있었다”며 “그러나 지금은 지렛대가 판매업체나 컨설턴트가 아닌 구매 고객에게 넘어갔다”고 분석했다.

◇순익 전망도 별로=기술 구매 고객들이 더 많은 것을 원할수록 월가도 더 많은 것을 원한다. 그 결과 하이테크 업계가 순익 증대 요구를 충족시키기가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기업재무 조사회사 톰슨 파이낸셜 (Thompson Financial)은 하이테크 산업 순익이 올해 40% 증가하고 내년에는 15% 증가에 그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마이클 톰슨 조사 담당 이사는 “월가 투자자들이 이런 전망에 만족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줄어든 고객 지출과 가중되는 실적 압박이라는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그 중 가장 널리 논의되는 방안이 통합이다.

투자은행 딜로직에 따르면 올해 첫 8개월 동안 미국 내 소프트웨어업체들의 인수합병은 164건, 가치로는 29억 달러에 달했다. 이는 지난 해 109건, 24억 달러에 비해 상당히 늘어난 수치다.

기술기업들은 인수합병 외에 해외에서도 성장의 길을 찾고 있다.

기술시장조사업체 메타그룹은 유럽, 중동, 아프리카 지역의 총 기술 지출이 내년에 북미의 기술 지출을 앞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메타 그룹은 아울러 아시아 태평양 지역이 비록 IT 지출 규모가 비교적 적긴 하지만 갈수록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점을 중시하고 있다.

<제이 안 기자 jayahn@ibiztod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