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칼럼]남북 IT교류와 민족 번영

지난 12월 19일부터 23일까지 중국 선양에서 남북정보기술 국제학술대회가 열렸다. 언어정보산업표준위원회와 국어정보학회, 조선과학기술총연맹, 중국조선어신식학회 공동으로 남과 북을 포함, 재외 동포학자 등 50여명이 모인 가운데 발해대학의 협조 아래 원만하게 개최됐다. 이번 모임은 1994년 ‘코리안 컴퓨터처리 국제학술대회’가 94년 옌지에서 태동한 이래 10주년(남북교류 학술대회 중 가장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는 모임임)을 맞는 뜻깊은 자리였다.

 40편 가까운 논문이 발표된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남한에서는 정보기술용어, 자국어 인터넷 주소 및 문서처리, 정보처리 온라인 서비스 등의 정보기술 분야를, 북한 쪽에서는 정보기술용어와 기계번역, 음성합성, 음성처리, 문법검사, 문자인식 등을 주로 다루었다. 북쪽 논문의 특징은 정보기술 분야 논문이 많다는 점도 있지만 젊은 학자들의 성과물이 크게 늘었다는 점이다. 20, 30대가 중심이었으며 모두 정보기술 분야에서 실무기술력이 높은 사람들이어서 기술적으로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었으며 자신감을 가진 모습이었다. 특히 CDMA 상용화 기술을 개발한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의 최완 팀장이 발표 후 5분간 동영상을 상영하는 동안 북쪽의 젊은 참석자들이 각별한 관심을 보인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초반의 상호 이해단계, 중반의 공백기를 거쳐서 후반에는 실질적 공동연구 모색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994년 첫 회의 때엔 호칭 문제 등 이념과 체제 갈등으로 고함이 오갈 정도로 탈도 많았지만 성과도 컸다. 하지만 그 후 여러 해 만나서인지 이제는 이해하는 폭이 넓어졌고 회의 진행이 많이 부드러워졌다. 또한 괄목할 성과도 있어서 ‘정보기술 용어사전’을 두 번에 걸쳐서 출판하기도 하였다. 중반에는 한때 자모 순서 등을 놓고 줄다리기를 하며 회의마저 열지 못하는 등 진통도 잇따랐지만, 후반에는 ‘정보기술용어사전’ 확장 편찬에 관한 공동연구 성과를 내기도 했다.

 학술대회가 개최된 옌지시는 옌볜조선족자치주의 주도로서 경제의 중심이다. 초기의 옌지공항은 비행기 트랩을 내려 작은 청사까지 걸어 나와야 하고, 트럭으로 짐을 실어와서 호명하며 장터에 짐을 내리듯이 하던 곳이었는데 새 공항청사가 완공돼 몰라볼 정도로 발전해 있었다. 옌지는 한국의 한 도시 같은 기분을 들게 만든다. 어느 날 아침에 호텔 부근 공원을 산책하다가 어린 형제가 우리말을 하며 놀고 있는 정겨운 모습을 보고 옛 생각에 빠져들었던 기억이 난다. 이번 학술대회가 열린 금화원호텔이 있는 선양의 한국거리인 서탑 지역은 한국의 어느 도시의 번화가와 비슷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만큼 발전한 곳이다. 학술대회 명칭에서 ‘코리안’이라고 쓴 것은 남쪽에서는 우리글을 ‘한글’이라 하지만 북쪽은 ‘조선글’이라 쓰기 때문이다. ‘우리글’로 표기하려 했으나 중국 동포는 국적이 중국이므로 그들에게 ‘우리글’은 곧 중국어가 된다. 그래서 ‘코리안’으로 표기하게 된 것이다.

 과거 10년의 이러한 길 닦기를 바탕으로 앞으로 10년간은 실질적인 기술교류가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이번에 북쪽에서 정보기술 신세대들이 주로 참석했듯이 비슷한 또래의 남쪽 기술자, 학자들과 실질적으로 기술협력을 논의할 수 있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우선 남북이 가지고 있는 정보기술의 강점을 상보적 차원에서 그리고 국제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미래 지향적 기술개발에 집중해야 한다. 이제 남과 북은 미래를 내다보며 상생을 위한 실질적 기술교류가 이루어져야 한다. 앞으로 새로운 10년은 남북의 새로운 세대가 이끌어 갈 수 있는 길을 닦아야 할 때다. 새해에는 앞 세대가 이룬 성과를 보다 확대발전시켜 민족의 번영을 함께 책임질 수 있도록 큰 길이 열리길 간절히 바란다.

<변정용 동국대 컴퓨터멀티미어학부 교수 byunjy@dongg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