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이틀 남았다. 한 해가 막을 내리고 있다. 가는 해와 오는 해가 임무교대를 해야 할 시간이다. 이틀 후면 2004년은 역사 속에 묻힌다. 올 연말은 저기압이다. 착 가라앉아 있다. 당연하다. 워낙 경기가 불황이다 보니 연말의 들뜬 분위기를 느낄 수 없다. 삶이 고달프면 모든 게 귀찮다.
하지만 세월에 구분이란 있을 수 없다.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내일일 뿐이다. 어제는 노랗고 오늘은 파랗고 내일은 붉은 게 아니다. 올해니 내년이니 하는 것은 인간의 구분이고 분별일 따름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연말에 대한 의미도 달라질 수 있다.
시가에 능했던 근세의 선승인 학명(鶴鳴)선사는 이런 시를 남겼다. “묵은 해니 새해니 분별하지 말게/겨울 가고 봄이 오니 해 바뀐 듯하지만/ 보게, 저 하늘이 달라졌는가/우리가 어리석어 꿈속에 사네”
하지만 선승의 인식과는 달리 우리는 분별과 구분 속에 세상을 살고 있다. 속세에 사는 우리가 한 해를 마감하면서 무상무념일 수는 없다. 삶의 덧셈과 뺄셈을 해 봐야 한다. 이왕 정해진 틀이 있으니 그 틀 안에서 잘했는지, 아니면 못된 짓 하며 허송세월했는지 삶의 결산은 꼭 필요한 것이다. 샐러리맨들은 해마다 12월에 연말정산을 한다. 한 푼이라도 환급받으려고 각종 증빙자료를 꼼꼼히 챙겨 제출하느라 부산을 떤다. 자신의 수입만 연말정산할 게 아니다. 그보다 더 소중한 삶의 연말정산을 해야 한다. 그래야 발전이 있다. 재도약이 있다. 살맛나는 세상을 구현할 수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삶은 유한하다. 누구도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 그것은 신의 영역에 속하는 일이다. 조물주가 우리 생명줄을 쥐고 있다. 그 끈을 언제 놓을지 모른다.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는 말은 그래서 깊이 새겨 들어야 한다. 일할 기회가 있을 때 잘해야 한다. 기회를 잃고 후회한들 원님 행차 뒤에 나팔 부는 격이다.
이제 자신에게 솔직하게 물어보자. 한 해 최선을 다했는가. 자신의 위치에서 후회 없이 살았는가. 그렇다면 그에게 올해는 보람 있는 한 해가 될 것이다. 비록 그가 경제난에다 각종 난관에 봉착했어도 후회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국가적으로는 회한이 많은 한 해였다. 경제성장률도 당초 계획보다 크게 낮았다. 청년실업률은 8%대에 달했다. 가계 빚은 400조원을 넘어섰다. 신용불량자도 360만명에 달했다. 숨이 가쁜 힘든 한해였다.
정치권은 국민의 불신만 쌓았다. 여야 대표가 연말 4자 회담을 통해 현안을 풀어줄까 기대했으나 이 역시 물거품이 됐다. 설마 했더니 역시나였다. 평행선을 달리면 만남은 없다. 맺힌 것을 풀면서 사는 게 우리 삶이다. 조상들은 셈할 게 있으면 해를 넘기기 전에 했다. 하물며 나라 일은 더 말 할 나위가 없다. 새해 예산안조차 통과시키지 못하고 있다. 새해 나라 살림을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정치권은 상쟁을 그만두어야 한다.
새해에는 제발 이런 일들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안 그래도 갈 길이 먼 우리다. 선진국 도약은 말로 되는 게 아니다. 정부 계획대로 내년에는 경제성장률 5%를 달성하고 일자리 40만개를 만들어야 한다. 저무는 한 해의 고갯마루에서, 한 번 지나가면 다시 사용할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기에 더 나은 새해를 기다리며 소망해 본다. 새해에는 통합과 상생속에 경제가 되살아나 국민의 얼굴에 보름달 같은 환한 웃음꽃이 활짝 피기를 기대한다.
이현덕주간@전자신문, hd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