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스포럼]중소기업의 미래

내가 창업을 한 지도 벌써 15년이나 됐다. 조금은 사업한 흔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수년 만에 성공한 벤처기업 경영자들의 이야기를 접할 때면 ‘나는 왜 이렇게밖에 못했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를 찾아오는 많은 미래 경영자를 위해 월남전에라도 참전한 용사처럼 무용담을 늘어놓는다. 가보지 않고는 느낄 수 없는 길이기에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해 준다.

 15년 전 맨손 창업은 정말 무모한 도전이었다. 다시 태어나도 또 사업을 하겠노라 장담할 자신은 없다. 하지만 그동안의 고생과 속상했던 일들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으며 1000여명의 직원과 함께 일한다는 것이 평생에 가장 큰 보람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 기업을 운영하기는 참 어렵다고들 한다. 기업 하기 쉬운 나라에서는 성공할 확률이 높은데, 우리 현실은 그렇지 않아서인지 여러 가지 쉽지 않은 여건을 이겨내는 기업들이야말로 진정한 경쟁력을 갖춘 게 아닌가 싶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창고 회사, 어둡고 조그만 지하 공장, 동네 주부사원들 등…. 체험해 보지 않고 어찌 그냥 노하우가 얻어지겠는가. 과거 대기업들의 출발 역시 한결같이 미약했고 힘겹고 어려운 파도를 넘어야 고요한 망망대해가 있다는 것을 믿으며 정진한 덕에 오늘의 대기업으로 성장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우리 기업의 평균 수명은 10여년으로 대체로 이를 넘기기가 어렵다고 한다. 일본·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단명한 기업이 많지만 이제 우리도 세계적인 기업들을 배출하고 있다.

 필자는 전자부품 사업으로 5년, 휴대폰 관련 제품 사업으로 5년, 디스플레이 사업으로 5년 그리고 이제 디지털 컨버전스 사업으로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옛말에 한 우물만 파라는 속담이 있지만 사업 특성에 따라 발빠른 변화가 필요한 때인 것 같다. 지금도 수년 후의 변신을 위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우리 중소기업들도 과거처럼 열심히만 하던 경영에서 이제는 밖으로 눈을 돌려 글로벌 경쟁체제를 시급히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고 그러한 일들은 국내보다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되어야 한다.

 많은 개도국이 우리를 추격해오고 또 이미 추월하기에 이르렀다. 디지털TV 부문이 대표적이다. 디지털TV는 차세대 성장동력일 뿐만 아니라 PDP와 LCD 패널 생산 1, 2위 기업이 모두 국내에 있어 우리 기업들은 아주 유리한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시장에서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 매년 두 배 이상 성장하는 디지털TV는 선진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가 디지털 방송을 시작하면서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과거 50여년 동안 브라운관TV가 독주를 해왔고, 이제는 초박형 디지털TV가 속속 개발되어 가격도 많이 저렴해지고 있다. 이 디지털TV의 개발과 생산 능력을 갖춘 곳은 한국, 일본, 대만 등 몇 나라에 집중되어 있다. 아직까지 우리 기업들이 선전하고 있지만 글로벌시장 판도가 바뀔 조짐이 보이고 있다. 대만, 터키, 중국 등의 대형 기업들이 국내에서 부품을 조달해 생산할 뿐 아니라 심지어 우리업체에 디자인, 설계, 금형, 보드 개발 등 아예 턴기형식으로 개발해 가고 있다. 국내에서 구입한 부품으로 조립한 디지털TV는 유럽시장에서 가격파괴 전략으로 우리업체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앞으로 1, 2년 동안은 지금처럼 우리나라에서 부품이나 설계를 잘 사가겠지만 그 후에는 그들이 직접 개발·생산할 것으로 보인다. 막강한 자본력을 갖춘 이들 기업이 기술력을 갖춘 우리기업에 투자하거나, 고급인력 스카우트에 나서는 것만 봐도 그렇다. 그 대가는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뿐이다.

 우리 중소기업들은 외국기업들에 비해 규모로는 열세지만, 함께 부품표준화 및 공동개발, 공동구매 등에 힘을 쏟아 국제 경쟁력을 유지해 날로 열악해지는 중소기업 경영환경에서 자생의 활로를 찾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분명 할 수 있다. 2005년은 중소기업 승리의 해가 될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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