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일본의 대표적 인터넷업체인 라이브도어가 AM라디오방송국인 닛폰방송(NBS)의 주식 35%를 취득했다고 발표해 일본 방송계에 파문을 던졌다. 라이브도어는 이미 NBS의 주식 5%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이번에 약 700억엔이라는 거금을 주식매입에 투자, 일약 1대 주주로 올라섰다.
당장 비상이 걸린 쪽은 최대 민방인 후지TV. NBS가 후지TV의 최대 주주인 만큼 향후 라이브도어에 의한 후지TV ‘장악’ 시나리오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에 맞서 후지TV는 계획되어 있던 있던 NBS의 ‘주식공개매수(TOB)’를 서두르고 있다. 잘나가는 인터넷업체의 왕성한 사업 확장과 민방 간의 승부는 향후 디지털 방송시대의 주도권 다툼으로까지 해석되며 일본 방송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라이브도어의 노림수=라이브도어의 호리에 사장은 NBS 주식 취득의 목적을 “인터넷과 기존 미디어를 융합시키기 위한 것으로 2년 전부터 계획했던 일”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방송국들은 어마어마한 시청자층을 확보하고 있으면서도 이를 효과적으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며 “당장 방송국들의 웹사이트부터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라이브도어는 구체적으로 ‘웹사이트에서 프로그램 이외 물품 판매 및 금융사업, 웹메일, 게시판, 옥션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해 시청자들의 충성도를 높일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라이브도어의 본심은 단순히 ‘인터넷과 미디어의 융합’ 만은 아니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후지TV와 NBS 간 지분관계(NBS는 후지TV 주식의 22.5%,후지TV는 NBS의 주식 12.4%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를 감안할 때 향후 후지TV의 경영권마저 노리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다.
또한 이미 후지TV의 NBS 주식 TOB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갑자기 NBS 주식을 가로챈 것은 도덕적으로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후지TV, 역공에 나서나=라이브도어의 갑작스런 NBS 주식 인수 발표에 후지TV는 안절부절이다. 우선은 TOB를 서두르면서 향후 라이브도어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TOB 후 주식 보유비율 목표도 당초 ‘50% 이상’에서 ‘25% 이상’으로 내려 잡았다. 또한 TOB 종료시점도 이달 21일에서 다음달 2일로 연장했다. 이는 ‘TOB 추진시 보유비율이 목표에 도달하지 않았을 경우 TOB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의식한 것으로 보다 안전하게 NBS 지분을 확보, 라이브도어를 확실하게 견제하겠다는 뜻이다.
일본 상법 241조에서는 주식을 상호 보유하고 있는 기업 중 어느 한 쪽이 25%를 넘는 주식을 확보하면 상대방 기업이 가진 의결권이 없어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쌍방이 모두 25% 이상의 주식을 보유하면 쌍방 모두 의결권이 없어진다. 따라서 향후 후지TV가 NBS의 지분을 25% 이상으로 늘리면 후지TV에 대한 NBS의 의결권은 소멸돼 사실상 라이브도어로부터의 경영권 위협도 사라진다.
△업계 반응은=일본 방송업계는 이번 라이브도어의 NBS 지분 인수에 일제히 ‘일본의 상도의에 어긋한 행동’이라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특히 호리에 사장의 ‘인터넷과 미디어의 융합’ 발언은 솔직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당당히 ‘후지TV와 모회사 후지산케이그룹 경영에 관여하고 싶었다’고 한다면 이해했겠지만 단순히 웹사이트 개편 운운하며 시너지 효과를 노리겠다는 것은 속내를 숨긴 위장술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프로야구단, 통신업체 등을 줄줄이 인수하며 왕성한 식욕을 보이고 있는 인터넷업체에 대한 위기감도 적지 않아 보인다. 실제로 소프트뱅크의 BBTV, KDDI의 광플러스TV, 쥬피터의 온라인TV 등 대형 IP방송사업자들이 지상파 방송국에 군침을 삼키고 있다.
명승욱기자@전자신문, swm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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