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스포럼]SI산업 25년

내일이면 3월이다. 새봄에는 새 희망을 가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서민경제의 안정, IT산업의 회복과 발전, 청년실업 해소와 경제회생에 대한 희망을 품어본다. 이번 봄은 지난 봄과 다를 것이고, 올해는 작년과 다를 것이다. 희망적인 메시지를 서로 주고 받으며, 새봄을 맞아야 할 것이다.

 ‘만물은 유전(流轉)한다’고 했다.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한 이 말은 ‘자연 속에는 어떤 항구적인 실체가 없다’는 말로 해석된다. 유전만이 실재적이며, 변화한다는 사실만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990년대에 경영혁신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면서, 많은 조직에서 이러한 철학에 바탕을 두고 조직 혁신을 주도했으며, 큰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또한 불교에서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고 한다. 역시 항상 그대로 있는 것은 없고, 모든 것이 변해 간다는 말이다.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마음을 비우라는 메시지다.

 헤라클레이토스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파르메니데스는 정반대의 견해를 가진 철학자였다. 헤라클레이토스가 생성 변화의 사실을 강조한 데 대해, 그는 진정한 실재의 불변성과 항구성을 강조했다. 파르메니데스는 우리가 범상한 이익을 추구하고 있는 이 세계는 허망한 비실재적인 세계이며, 불변의 실재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헤라클레이토스도 다소 다른 측면에서 실재성을 인정한다. 그는 태양도 자기의 법도를 넘지 못할 것이며, 모든 것이 법도를 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변화란 곧 법도에 따르는 정연한 변화이며, 변화의 구조는 그 자체를 이성의 구현이 되게 하는 하나의 규칙성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즉 변화는 결코 제멋대로 무질서한 것이 아니다. 변화는 우주의 불변적인 규칙에 따라 일어난다. 변화가 끝이 없고 우리에게 실재성이 없는 듯이 보이지만, 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모든 것이 일정하고 명료한 방향으로 변하고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SI산업, 즉 IT서비스산업에서 유전하는 것은 무엇이고, 변치 않는 항구적인 실재는 무엇인가. 올해는 우리나라에서 SI산업이 탄생한 지 25년째 되는 해다. 1981년 쌍용정보통신이 시스템통합사업에 뛰어들면서 시작된 우리 SI산업은 90년대의 고도성장기를 거쳐 현재 20조원에 가까운 대규모 산업으로 성장했다. 그동안 불변의 실재는 무엇이었으며, 끝이 없는 변화는 무엇이었던가. 요소기술과 사업대상은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산업 초창기의 사무자동화나 경영정보시스템 구축 사업들에서 현재는 고도의 전자정부 구현사업과 IT839 지원사업, 산업 특화 솔루션 및 고급 응용 솔루션 구축사업으로 사업 대상이 진화돼 왔다. 요소기술과 방법론은 더욱 큰 변화를 겪었다. 주먹구구식 개발 방법에서 CMMI와 컴포넌트 기반 개발까지 기술적 진보를 이뤘으며, 소프트웨어 직접 개발에서 패키지 통합 중심으로 발전했고, 생산성과 생산기술도 많이 향상됐다.

 그러나 변치 않는 것이 있다. 고객에 대한 초점이다. SI산업이 고객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정보화사업이라는 사실은 변치 않았다. 고객의 사업분야와 고객의 요구기술이 끊임없이 변해 왔기 때문에, SI사업의 대상분야와 기술이 변화한 것이지, 고객의 정보화 요구를 충족시켜 준다는 사업의 본질은 변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면 산업 활성화를 위한 대안은 보다 명확해진다. 고객의 요구를 끊임없이 발굴하고, 그 요구를 충족시켜 주는 사업을 더 많이 제안하고 수행하는 것이다. 고객이 언어로 표현하는 표면적인 요구보다 고객의 마음속에 내재한 요구, 고객의 미래 요구까지 통찰해 제안하는 능력을 키우고 실행해야 한다.

 IT서비스업의 세계적인 추세가 유관산업과의 강력한 연계발전이다. 전자나 자동차 등의 제조업은 물론이고, 통신·방송·유통·서비스 등 제반 분야의 산업 발전추세를 반영한 새로운 사업 영역이 IT서비스 사업 영역으로 속속 편입되고 있다. 시스템운용사업의 증대에 힘입어 영역 확대는 더욱 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25세가 되는 우리 SI산업은 사업 영역의 첨단적인 개편과 서비스 및 생산성 혁신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다. SI기업이 IT분야의 진정한 종합서비스제공자(Full Service Provider)로서 큰 흐름과 유전하지 않는 실재를 보는 혜안을 더욱 길러야 할 때다.

◆김현수 (한국SI학회장, 국민대 교수) hskim@kookmi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