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공공 시장의 마지막 대형 프로젝트인 범정부통합센터 1차 사업에서 제안서 마감 불과 이틀 전, 삼성SDS와 LG CNS의 그랜드 컨소시엄 소식이 시장에 알려졌다. 사업 구도가 양사의 대결 구도 형태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막상 삼성과 LG가 한배를 타자 남은 SI사는 물론 서버, 솔루션 등 나머지 IT 기업들이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됐다. 다양한 컨소시엄의 경쟁을 전제로 사업제안서를 작성한 A사는 제안서 자체를 제출하지 못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특정 사업 영역에서 경쟁력을 발휘하고 있는 중견 기업이 주 사업자로 나서 선발 사업자들과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것은 간혹 있는 일이지만 이처럼 1, 2위 사업자 간 동맹은 의외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시장의 불필요한 출혈 경쟁을 줄이고, 수익성을 높여야 한다는 이해가 맞아떨어지면서 앞으로 얼마든지 재연될 수 있는 행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들만의 잔치’=범정부통합센터 사업에 이어 올해 추진되는 단일 GIS 프로젝트 중 최대 규모인 건설교통부 토지종합정보망(LMIS) 프로젝트는 최근 SK C&C(주사업자)와 삼성SDS 몫으로 돌아갔다. 애초 지난 98년 이후 2004년까지 연차 사업으로 진행돼 왔던 LMIS 프로젝트를 나눠 수행해 온 SK C&C와 삼성SDS 간 맞대결이 예상됐지만 양사가 대결 카드를 버리고 상생을 선택한 결과다.
이에 앞서 지난해 추진된 서울시 도시고속도로 3단계 지능형교통시스템(ITS) 프로젝트는 LG CNS와 SK C&C가 짝을 이뤄 포스데이타(KT네트웍스), 대우정보시스템(서울통신기술) 컨소시엄을 따돌렸다.
이 같은 현상은 대형 프로젝트에 국한되지 않는다. 지난해에 추진된 전자정부 통신망 고도화를 위한 정보화전략계획(ISP) 수립 프로젝트는 삼성SDS와 LG CNS가 컨소시엄을 구성,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 사업권은 현대정보기술로 넘어갔다. 또 LG CNS와 SK C&C가 짝을 이뤄 소방방재청이 국가 재난 관리 업무 개선방안 도출과 이를 지원하는 정보시스템 중장기 계획 수립을 위해 추진한 국가안전관리 2단계 정보화선행사업(BPR/ISP) 사업권을 손에 넣었다.
◇담합 시비 논란 일까=범정부통합센터 프로젝트에서 협력을 체결한 삼성SDS와 LG CNS는 “출혈이 불가피한 경쟁 구도에서 상생 가능한 협력을 통해 비즈니스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것은 회사뿐 아니라 시장 질서를 회복한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무엇보다 컨소시엄 구성에 관한 조건에 걸릴 것이 없는데 문제가 될 소지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경쟁사들의 생각은 다르다. 당시 한 업체는 공정거래위원회에 ‘시장 지배적 사업자의 협력으로 인한 과점 및 불공정거래 행위에 저촉 여부’에 대해 질의했다. 이 회사 공공사업담당 임원은 “법적으로 양사의 컨소시엄은 하자가 없지만, 결과적으로는 시장 지배적 위치에 있는 기업들의 협력이 결국 완전 경쟁 구도에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고 밝혔다.
공정위은 이에 대해 “1차적으로는 수요처가 제시한 컨소시엄 구성 여건이 저촉되지 않으면 문제될 것 없다”며 “그 이상의 문제는 기업에서 공정위에 정식으로 이의제기를 할 경우 답을 줄 수 있다”는 원론적인 설명만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다른 기업이 법무법인에 관련 사안을 질의했고, 법무법인 측에서는 “문제를 삼을 경우 충분히 논란이 될 사안”이라고 답한 것으로 확인됐다.
아직까지는 경쟁사에서 시장 지배 사업자의 협력에 대해 공식적인 이의 제기가 없지만, 업체 스스로도 이런 일이 늘어날 경우 법적인 대응을 해야 할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견 SI, 살 길 어떻게 찾나=수익성 확대가 최고의 미덕으로 꼽히고 있는 현재 분위기에서 대형 SI업체의 합종연횡은 전방위에 걸쳐 나타날 것으로 전망된다. 기존에 확보한 브랜드 인지도 및 비즈니스 수행 능력을 접목, 시너지 창출이 가능하고 사업 수행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필요하면 한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대형 SI업계의 협력 구도는 갈수록 입지가 축소되고 있는 중견·중소 SI업계를 힘들게 한다. 중견 SI진영이 대형 SI업체의 공동 행보에 대해 ‘나눠먹기 행태의 전형’이라고 비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획력과 투자능력, 인력 가용성 측면에서 중견·중소 SI업체에 비해 월등한 대형 SI업체가 새로운 기술 개발에 앞장서고 새로운 IT 비즈니스 모델 창출 등을 통해 시장 활성화를 꾀하기보다 눈앞의 이익에 급급해 하고 있다는 평가다.
한편에선 중견 SI업체들이 특화 전략이나 중위권의 상생 전략이 좀 더 적극적으로 추진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영업력은 물론 프로젝트 경험 노하우가 중요한 판단 기준인 상황에서 대형 SI업체가 공략하는 시장과 어느 정도 차별화해야 하지 않느냐는 견해다. 지난해 공생의 길을 모색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결실을 얻지 못하고 있는 동양시스템즈·대상정보기술·라이거시스템즈·대림I&S 등 중견 SI 4개 업체의 협력도 재추진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신혜선·김원배기자@전자신문, shinhs·adolfkim@etnews.co.kr
"상생 위한 선택"vs"그들만의 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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