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생산법인을 두고 있다 보니 ‘산업 공동화’니 ‘제조업 종사자 비율이 줄었다’는 등의 뉴스에 자연스럽게 눈길이 간다. 일부에서는 중국이 인건비는 싸지만 곧 많이 오를 것이고, 지리적·제도적 제약 조건 등을 생각할 때 중국으로 옮기는 게 별로 이점이 없지 않으냐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이나 질문들에 대한 답변은 의외로 간단하다. 공장의 해외 이전은 선택사항이 아니고 생존의 문제라는 것이다.
요즘 잘나가는 분야로 단말기 제조업계를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이들 세트 제조업체를 들여다보면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고 있는가 알 수 있다. 시장에서는 나날이 경쟁이 치열해져 가고 바이어들은 분기마다 가격인하를 요구해 온다. 제품의 라이프사이클은 갈수록 짧아져 지속적으로 연구개발비를 투입해야 하지만 원자재가 상승이나 공급난으로 인해 원가 상승 및 생산에 지장을 초래한다.
환율변동도 이들을 노리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세트 제조업체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들에 부품을 공급하는 업체들도 똑같은 어려움을 겪는다. 납품가 하락은 물론이고 결제조건이 악화돼 자금난을 겪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요즘에는 중국 업체들이 공급에 나서면서 가격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다. 세트 제조업체들이 좋은 품질의 부품보다는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정도의 품질을 가진 값싼 부품을 요구하기 때문에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연유로 세트 제조업체, 모듈 공급업체, 원자재 공급업체 모두 세계의 공장이라는 중국으로 모여들고 있다. 그래서 인건비나 건물 임대료는 물론이고 자재 구입 단가와 대금 지급 조건도 국내와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좋아졌다.
하지만 아직도 제품의 생산비용이 중국 업체보다 훨씬 높아서 이들 업체가 가까운 장래에 기술과 품질 면에서 더 나아진다면 우리는 중국에서도 설 자리를 잃을 것이라는 위기의식을 가진 채 달음질치고 있다.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수년 내 중국 업체에 따라잡힐 정도의 기술 수준을 토대로 사업을 영위한다면 그 기업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기술집약적이고 부가가치가 높은 분야에서 성공하겠다는 꿈과 의지를 불태우는 벤처정신이 요구된다.
하지만 이미 첨단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기술을 바탕으로 제조업을 영위하고 있는 기업의 경우 혁신기술로 재무장해 변신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기존의 조직과 현금흐름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기술을 위해 인력을 충원하고 집중 개발 과정을 거쳐 상품화해 시장에 진입하는 일련의 과정이 잉여자금과 기획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어쩌면 그림의 떡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관점에서 기술 이전이나 기업 인수합병(M&A)을 통한 신기술 확보가 매우 유용한 방법으로 여겨진다. 연구소나 연구개발 중심의 기업은 개발된 기술을 직접 상품화하기 어렵다. 따라서 기술 이전을 통해 로열티 등의 수입을 올리는 방안이 적합하며, 기술을 필요로 하는 기업의 경우 개발기간 단축에 따른 적기 시장 진입 등의 이득을 누릴 수 있다.
또 신기술을 기반으로 창업했으나 자금력이나 생산 기반시설 등의 부재로 사업화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의 경우 여러 조건을 갖춘 기업과 다양한 형태의 협력을 통해 신기술이 빛을 보게 할 수 있다. M&A는 그 중 한 방법이지만 상황과 조건에 따라 다양하게 구현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정부에서도 여러 가지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다만 서로 다른 배경과 장점을 가진 두 그룹을 매치시켜 사업화 단계까지 심도 있게 이끌어 주고 조언해 줄 수 있는 전문가 그룹이 아직 충분히 양성되지 않았다는 점이 아쉽다.
과거 많은 기업이 사업다각화 과정에서 부도를 내고 무너졌다. 가야 할 길은 알지만 어떻게 가야 할지 모르는 우리의 모습이 용기 있는 선구자들의 끊임없는 시도로 인하여 IT 강국다운 면모로 다시 보여질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정기성 자일론 사장 kschung@xil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