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방문중인 노무현 대통령이 그제 한국기업들의 해외 활동상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베를린 시를 방문한 후 그 곳 시장과 가진 환담자리에서 “베를린 시내를 지나가다 삼성의 광고탑이 광징히 큰 것을 보고 놀랐다”고 밝혔다. 삼성은 베를린 시내에 20여m의 대형 이미지 광고물을 설치했고 LG도 대형 덮개 광고물을 지하철 공사현장에 내걸었다고 한다. 해외에 나가면 공항이나 고속도로, 시내에 설치된 삼성이나 LG 등 국내 대기업들의 광고물을 볼 수 있다. 이 때는 감격스럽기도 하고 대견스럽기도 하다. 노 대통령도 아마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객지에 나가면 고향 까마귀도 반갑다고 하지 않던가.
삼성과 LG.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들이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이 뽑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한 사람으로 선정된 바 있다. 그만큼 삼성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기업 규모로 따지면 삼성과 LG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이들은 가전 분야에서는 경쟁 관계다. 그러다 보니 이 부분에서 두 업체 간 신경전이 상당하다. 지나칠 때도 있다. 두 업체가 함께 기사에 나올 때는 누가 앞에 나오느냐를 놓고 예민하게 반응할 정도다. TV나 세탁기·에어컨 등 신제품 발표나 시장 점유율 자료 등에서 신경전이 심하다. 간혹 물타기나 김빼기 수법 등이 동원되는 경우도 있다. 술에 물을 타면 제대로 술맛이 날리 없다. 같은 날 유사한 성격의 행사를 갖거나 상대방의 신제품 발표일보다 먼저 유사한 제품을 내놓고 김을 빼는 식이다. 당사자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믿을 수도 없다.
그러나 이 같은 네거티브 방식의 경쟁은 보기에 좋지 않다. 세계 1등을 지향하는 글로벌 기업들의 위상에 걸맞지 않은 행태다. 이런 것은 정치권이 즐겨 사용했던 방법이다. 지난 날 정부가 곤경에 처할 때 국민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물타기·김빼기 수법 등을 사용했다. 한때 이건희 삼성 회장은 우리의 정치력은 4류이고 기업능력은 2류라고 했다. 4류가 사용하는 정치권의 나쁜 수법을 기업들이 배워 사용하는 건 아이러니다.
최고가 되기 위해 선의의 경쟁을 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기업 간 경쟁도 이제는 글로벌 경쟁을 해야 한다. 세계인을 고객으로 상대해야 한다. 국내에서 경쟁은 시장 분할이다. 누가 이기건 결국 기존 시장의 나눔일 뿐이다. 상대의 시장점유율을 낮추고 자신의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전략은 크기에 한계가 있다. 소비자들의 심리는 똑같다. 같은 값이면 품질이나 디지인에서 앞선 제품을 선택한다. 품질이나 디자인이 같다면 가격이 싼 제품을 구입한다. 사정이 이렇다면 두 업체는 가전 부문에서 네거티브식 전략을 그만두어야 한다. 시장 분할이 아니라 새로운 시장 창출에 나서야 한다. 그것은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해 기술 우위나 디자인 품질에서 앞서는 일이다. 자기만의 지식구조를 만들고 이를 표준화하기 위해 지식과 기술 축적에 나서야 한다. 과감한 기술 투자와 전문인력 양성이 그 지름길이다.
해외에서 대형 광고물을 보면서 노 대통령이나 국민이 가졌던 ‘놀랐다’는 감탄사가 현지 시장에서 상품이나 기술을 통해 ‘또 놀랐다’로 이어져야 한다. 아이들 소꿉다툼 같은 상대방 소매잡기나 어깨로 미는 행태는 하지 않아야 한다. 그보다는 정도 경영과 정도 승부를 해야 한다. 누가 더 잘하나 경쟁을 해서 세계 일류 기업으로 우뚝 서야 한다. 옛말에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리랬다”고 했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세계시장에서 ‘또 놀랐다’는 국민의 소리가 들리도록 선의의 경쟁을 해보는 게 어떤가.
이현덕주간@전자신문, hd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