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대학 진학률을 자랑하는 우리나라는 이공계 대학 졸업생 비율이 선진국을 크게 상회한다. 그러나 대학의 질적 경쟁력에 대해 많은 사람이 우려하고 있다. 특히 기업의 불만은 점차 높아져 가고 있다. 경제성장과 과학기술의 빠른 발전을 기원하는 마음이 반영된, 교육혁신을 원하는 목소리라고 생각하고 싶다.
우리나라 중·고등학생의 과학과 수학실력은 외국에서도 부러워할 만큼 높은 수준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대학 경쟁력에 있어서는 비판을 받고 있는가. 인력의 공급자인 대학과 수요자인 기업 그리고 정책입안자인 정부가 냉철하게 그 원인을 분석하고 반드시 함께 해법을 찾아야 한다. 물론 대학만 탓할 수도 없다. 정부 재정이나 민간 부문에서의 대학에 대한 투자는 한계가 있지만 대학정원과 대학진학 희망자 수가 경제의 압축성장 과정에서 기하급수적으로 비대해져 교육여건은 상대적으로 상당히 취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대학은 현재 기초과학 연구와 인력양성이라는 전통적인 상아탑의 기능에 덧붙여 산업발전의 주요한 축 역할도 해줄 것을 요구받고 있다. 기초과학 육성과 양대 축을 이루어온 인력양성은 대학의 고객이 학생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모방·추격형 경제성장에서 혁신주도형 경제성장으로 나아가기 위한 국가적 목표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특히 과학과 산업부문에서 과학기술 지식을 기반으로 사회 각 부분의 혁신을 주도하는, 이른바 ‘창조적’ 이공계 인재는 국가기술혁신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요소다. 창조적 인력은 첨단 분야에서 세계적인 연구성과를 창출하는 핵심 연구인력부터 중소·벤처기업 등 생산현장의 산업기술 인재까지 국가의 기술수요가 있는 모든 부분에서 배출되고 종사되어야 한다.
이런 전통적 대학의 기능에 덧붙여 우리나라 대학들도 산업계 지원기능을 통한 국가경쟁력 강화, 즉 아카데믹 캐피털리즘(academic capitalism)을 새롭게 요구받고 있다. 우리 대학은 그동안 산업체 수요를 반영할 수 있는 특성화된 교육체계가 마련되지 않아 산업기술 인력과 기술수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특히 산업과 사회의 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 핵심 연구인력과 현장기술 인재의 양적·질적·분야별 수급 불일치는 ‘구직난·구인난’을 동시에 초래하면서 기업경쟁력, 나아가 국가경쟁력 확보에 적신호로 작용하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경상적 재정과 함께 기술발전에 따라 점차 규모가 늘어나는 연구비를 확보하기 위해 대학에 경쟁원리가 작동하기 시작하면서 1980년대를 전후해 아카데믹 캐피털리즘이 도입됐다. 이후 산·학협력, 스핀오프 기업, 대학기업 등의 설립을 통한 수익창출, 테크노파크 조성 등이 대학의 주요 활동이 되면서 산업지원 기능이 강화되고 지역과 국가 산업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대학이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아카데믹 캐피털리즘의 개념이 국내에 도입된 것은 1990년대 후반이다. 그러나 대학별 산·학 협력단이 2003년에 설치되는 등 제도적인 기반이 겨우 마련된 정도다.
국가의 미래는 결국 사람의 경쟁력으로 결정된다. 이공계 대학 스스로 ‘창조적’ 이공계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운영에서 제도까지 총체적인 자체혁신을 이끌어내야 한다. 또한 다양화·특성화·자율화를 통해 대학과 인재가 다양한 국가적 수요와 지역적 역량 및 발전에 적합하도록 성장·기여하고 지속적으로 보람찬 인생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기업도 대학의 이러한 노력을 존중하고, 대학개혁 지원에 동참해줘야 한다.
◆ 박기영 청와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 parky@presidunt.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