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IBM은 너무 경직돼 있습니다. 의사결정도 느려서 다 된 딜(deal)을 눈앞에서 놓쳐 버리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요즘 한국IBM 협력사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얼마나 신속하게 고객 요구에 대응하느냐가 사업 성공의 관건 중 하나인데 새로운 요구 사항이면 적용할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무조건 거절한다는 것이다. 근거를 마련하느라 서류 작업에 매달리다 보면 이미 거래는 끝나고 고객은 떠난다는 것.
지난 1월 한국IBM에 이휘성 사장이 취임했지만 지난해부터 계속된 통제 때문에 한국IBM 직원들이 자기 검열이라는 무기력의 늪에 빠져버린 것은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아시아태평양 지부를 설득해 볼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한국지사의 새로운 안은 거절당할 것이라며 스스로 선을 긋습니다. 민감한 시기에 괜히 밉보이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새 정책을 내놓으려면 실정에 밝은 협력사와 끊임없이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하는데 한국IBM은 보안 맹신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탁상공론적인 정책이 나오더라도 보안을 잘했다는 칭찬을 듣고 싶어하는 조직이니까요.”
물론 한국IBM의 이러한 태도는 충분히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지난해의 충격에서 벗어나기까지 시간이 더 필요하고 본사도 한국IBM을 아직 신뢰하기에는 이르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IBM은 목소리를 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현장을 챙기기 위해 바쁜 직원보다는 서류 작업(페이퍼 워크)을 잘해서 업무 보고를 멋있게 한 직원이 더 평가받을까 두렵다는 협력사의 지적은 뼈아프게 들린다. 이들 업체는 한결같이 한국IBM과 긴밀한 협조를 맺고 있는 충성도 높은 협력사다.
지난 1월 한국IBM의 새 사령탑으로 취임한 이 사장은 그 어느 CEO보다 온디맨드를 강조한다. 기업이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시장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더욱 더 빠르고 유연하고 탄력적이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국IBM이 다른 기업을 위한 도구는 충분히 제공하고 있는지 몰라도 스스로 얼마나 온디맨드한지는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류현정기자@전자신문, dreamsh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