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온라인게임이 세계 명품 반열에 오르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비디오·PC게임은 일본과 미국으로부터 배웠지만 온라인게임은 청출어람이 됐다. 이 기회를 세계시장 지배력으로 지켜가려면 세계 최고의 명작과 명인을 만들어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갖 10년을 넘긴 나라에서 ‘스타크래프트’ ‘울티마’와 같은 명품과 리처드 게리엇, 빌 로퍼와 같은 거물이 배출되기를 바라는 것에 혹자는 ‘우물가에서 숭늉찾기’란 토를 단다. 하지만 이것은 역사 이전에 출발이 다른 문제다. 전장은 바로 온라인게임이다.
“지금까지는 게임을 만드는 것이 사람보다 우선돼 왔습니다. 대부분의 개발팀 이름은 게임의 이름을 그대로 따붙였습니다. 팀장이야 그 게임의 성공에 따라 빛을 볼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개발자는 그 게임의 생명연한에 좌지우지되는 여정을 겪어야합니다. 시간이 흘러 게임의 생명이 꺾인다고 해서 사람도 꺾이게 해서는 안됩니다”
넥슨이 4년째 운영중인 개발 전문 스튜디오 데브캣 김동건 실장의 진단이다. 개발전문 스튜디오의 운영은 넥슨이 국내 최초로 시도했다. 국내 게임 개발 풍토의 취약성을 단적으로 설명해주는 대목이다. 물론 지난 10여년 동안 ‘리니지’의 송재경, ‘라그나로크’의 김학규 등 세계에 내놓을 만한 굵직굵직한 프로듀서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약간씩 형태는 다르더라도 지금처럼 개발팀제로 그에 속한 개발자들의 역량과 재능을 뽑아먹고, 소진된 인력은 다시 다른 개발사나 프로젝트를 찾아 떠돌도록 만들어서는 생산에너지의 축적이 불가능하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데브캣’이 선택한 것이 스튜디오내 중첩된 개발라인의 상시 가동체제다.
게임 하나를 놓고 볼때 개발에서부터 안정화까지는 적어도 2∼3년이 소요된다. 완성도 높은 게임을 추구하다 보니 그 기간은 점점 더 길어지고 있는 추세다. 그것 하나에 스튜디오 개발인력이 모두 달라붙어 있는 것은 비생산적일 뿐 아니라 리스크도 크다. 개발과 안정화의 중간쯤에서 또 하나의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그리고 그것이 안정화 단계에 들어가기 전 또 다른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기본적으로 새로운 것을 하기 좋아하는 개발자들의 업무욕구를 풀어주기 쉽다. 그러면서 다른 일로 옮아갈 때 선임자는 후임자를 후계자처럼 그 일을 완전히 숙지하도록 만들어야하는 이른바 ‘도제’ 방식이 철저히 지켜지고 있다. 어쩌면 ‘마비노기’라는 세계적 작품이 데브캣에 의해 만들어진 것도 이같은 탄탄한 인력시스템 바탕이 있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러면서도 김동건 데브캣 실장은 한국 온라인게임의 성공 가능성을 토양적 우수성에서 찾고 있다. 그는 “한국은 북미 스타일의 게임이 유례없이 많이 팔린 나라일뿐 아니라, 일본 애니메이션·그래픽 등으로부터도 영향을 많이 받고 있는 중간자적 위치에 있다”며 “어느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개발 토양와 이용문화를 갖고 있다는 것은 세계적 게임이 나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기반”이라고 말했다.
산업을 키우려면 사람을 먼저 키워야한다는 것은 역사가 가르쳐 온 진리다. 그런 점에서 세계적 명성의 개발자를 만들어내는 일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체계적인 교육시스템의 확립이다.
“정부차원이나 민간 교육부문에서 게임교육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지만, 하나같이 전문성이 떨어집니다. 게임을 잘 만드는 사람일 수록 그 기술과 노하우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기 싫어합니다. 게임을 잘 알면 스스로 게임을 만들어 대박을 내려는 생각에 빠져있지, 후계자를 키울 생각은 않습니다”
온라인게임 ‘뮤’를 개발한 웹젠 창업자 3인방중 하나인 송길섭 상무의 말이다. 우리나라 게임 교육이 ‘욕심’과 ‘신기루’에 비틀려져 잘못된 길로 흐르고 있다는 지적이다.
시장은 관심있는 다수 보다 실력있는 소수를 찾고 있는데, 교육이 관심가진 사람만 자꾸 부풀려놓고 있는 것이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특히 정부와 공공의 역할이 중요하다.
기존 게임교육에 현실적 전문성을 보강하기 위한 노력이 진행돼야한다. 특히 교육을 위해 게임을 배우는 전문과정의 생성이 시급하다. 교육을 받아서 게임을 만들고 게임업계에 뛰어드는 방향성도 필요하지만, 교육을 위해 게임을 배우고 연구하는 새로운 접근이 요구된다.
송길섭 상무는 현재 진행하고 있는 8개 신규게임 프로젝트를 팀제에서 스튜디오 형식으로 전면 재편해 가동중이다. 세계적인 명품과 명인을 반드시 이들 스튜디오가운데 만들고 조련해내겠다는 의욕으로 넘친다. 그는 “경쟁과 상호 보완이라는 측면에서 폐쇄적 팀제보다는 각기 독립적인 스튜디오가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며 “궁극적으로 흥행 승부에선 스튜디오들끼리 명예를 건 경쟁이 일어나도록 유도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설명한다.
호사가들은 일면 ‘명작이 먼저냐, 명인이 먼저냐’라는 소모적 주제에 초점을 맞출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부분의 개발자들은 세계적 명품 온라인게임이 나오면, 자연히 그 명품을 만든 프로듀서와 디렉터, 프로그래머들은 세계적 이름을 얻게 되는 것 아니냐는 쪽에 동의하고 있다.
세계적 명성의 온라인게임과 전세계 이용자를 몰고다니는 명인 개발자가 한국이란 요람에서 자라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 희망을 찾고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 앞에 숙명처럼 던져진 과제다.
이진호기자@전자신문, jholee@
◆실험대 오른 명작 개발모델들
온라인게임 분야에서 세계적인 거장의 탄생을 기약하는 두가지 모델이 실험대에 올라있다.
하나는 이미 세계시장에서 보편적으로 검증된 개발 전문 스튜디오 운영이고 다른 하나는 세계적 거장과 손 잡고 한국적인 동시에 세계적인 게임을 개발하는 합작전술이다. 우선 합작전술에서 가장 모범적인 선례를 만들어가고 있는 곳이 엔씨소프트다.
이미 시장에서 검증된 해외 거장의 천정부지 몸값을 맞춰주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손쉬운 작업은 아니다. 스카웃 또는 제휴에만 수십억원 또는 백억원 이상의 뭉칫돈이 들고, 이후 2∼3년에 걸쳐 개발비용만 수백억원대의 돈이 받춰줘야하기 때문이다.
엔씨소프트는 이미 리처드 게리엇을 미국법인 엔씨오스틴에 영입해 ‘타뷰라라사’를 개발중이다. 이와 더불어 블리자드 출신의 초대형 개발자 3명이 뭉쳐 만든 아레나넷을 인수해 ‘길드워’를 만들어냈다. 이 두가지 사안만 가지고도 엔씨소프트는 글로벌시장에서 가장 저돌적으로 전선을 개척하는 기업으로 평가받기에 모자람이 없다.
뒤질세라 웹젠의 기세도 거세다. 웹젠은 올초 차기작 라인업을 발표하면서 세계적 거장 데이비드 존스와 손잡고 블록버스터급 온라인게임 ‘APB’ 공동개발에 나섰다. ‘APB’는 세계적으로 수천만장 이상이 팔려나간 ‘GTA’와 ‘레밍스’ 같은 데이비드 존스의 전작을 계승하는 것은 물론, 온라인이라는 새로운 플랫폼과의 접목이란 점에서 세계 게임사에 한 획을 그을 수작으로 기대받고 있다.
한빛소프트는 일명 김학규 사단과 함께 ‘그라나도 에스파다’를 개발중이며 해외에서는 빌 로퍼의 차기작 ‘헬게이트:런던’에 대한 서비스 판권을 확보한 상태이다.
김남주 웹젠 사장은 “해외 거장들과 함께 공동작업을 진행한다는 것은 한국 게임개발자들에게 더없이 좋은 자극제이자, 배움의 공간”이라며 “결과적으로 한국의 개발력을 글로벌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스튜디오 방식도 적극 시도되고 있다. 넥슨은 최근 게임사업의 고속성장 만큼이나 독자적 개발스튜디오 모델인 ‘데브캣’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온라인게임업체로는 첫 시도인데다, 개발 전문 스튜디오를 표방한 국내 첫 모델이기 때문이다. ‘데브캣’은 첫작품 ‘마비노기’가 온라인게임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제끼며 국내 서비스에 이어 일본, 대만, 중국에 잇따라 진출하는 등 천재적인 개발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데브캣은 넥슨이 글로벌 게임기업으로 커나가는 전략과 별도로 세계적인 게임스튜디오로서의 성장비전도 착실히 밟아가고 있다.
NHN도 본체 내에서 개발본부 형태로 운영돼오던 게임 개발인력을 스튜디오 형태의 ‘NHN게임스’로 분사시켜 독자출범시켰다. NHN게임스는 첫 작품 ‘아크로드’를 시작으로, 매년 2∼3개 게임을 시장에 꾸준히 내놓을 예정이다. NHN이 갖고 있는 한·중·일 3국 채널을 충분히 활용하면 NHN게임스가 만들고 게임은 글로벌 경쟁에서 만큼은 확고한 어드벤티지를 보장받고 있는 셈이다. 김동건 데브캣 실장은 “개발과 마케팅, 운영 등이 뒤섞여 있는 구조 보다는 독자적 스튜디오 모델이 세계적인 게임과 인물이 나올 수 있는 좀 더 의미있는 구조적 진화형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진호기자@전자신문, jho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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