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지식관리시스템(KMS) 업계를 들여다 보면 역사 속의 중국 춘추전국시대와 일본 전국시대가 떠오른다. 불과 4∼5년 전만 해도 KMS를 하겠다고 나선 국내 업체가 30여개였지만 결국 현재 KMS 전문업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은 한 손으로 꼽을 정도다. 여러 곳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쟁을 벌이지만 결국 ‘강한 자만 살아 남는다’는 인류의 법칙이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몇 안 되는 생존 기업 중 날리지큐브(대표 김학훈)와 온더아이티(대표 김범수)는 업력·기업 규모·고객수 등을 비교할 때 KMS업계를 이끄는 선도 업체이자 대표적인 맞수다. 이들은 일본 전국시대 ‘용호상박’의 대표적인 예로 꼽혔던 다케다 신겐과 우에스기 겐신을 연상케 한다. 역사적으로 누가 승자가 됐느냐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선의의 경쟁을 벌이는 라이벌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거침 없는 성장=양사의 공통점은 엔지니어 출신이 주축이 돼 창업한 이후 거침없이 성장해 왔다는 것이다. 온더아이티와 날리지큐브는 10명 미만으로 창업을 해 지금은 40∼50명의 인력을 가진 기업으로 성장했다. 온더아이티는 지난 99년 4월 김범수 사장을 포함해 삼성SDS 등 대기업에서 지식경영솔루션을 개발했던 엔지니어 7명이 주축이 된 회사다. 현재는 40여명의 인력과 50억원의 매출 실적을 거둘 정도로 컸다.
날리지큐브도 KT 출신의 김학훈 사장을 포함해 한미르 포털 개발팀, SK글로벌의 인터넷 기술개발팀 등의 엔지니어들이 뜻을 모아 만든 회사다. 이 회사 역시 10명으로 시작했으나 이제 56명으로 늘어났고 지난해는 5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양사의 이 같은 성공에는 무엇보다 제품을 패키지 형태로 제공하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반영됐다. 보통 2000년대 초만 해도 KMS라고 하더라도 패키지보다는 SI적인 성격이 짙었다. 그러나 양사 모두 초기부터 개발 위주의 SI성이 아니라 설치 후 바로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하고 고객이 쉽게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도록 제품을 패키지화하는 데 총력을 기울인 것이 시장에서 인정받은 셈이다.
◇고객과의 스킨십 우수=벤처 기업 입장에선 고객을 새로 만드는 것도 힘들지만 기존 고객을 유지하는 것도 결코 쉽지 않은 문제다. 잘나가던 벤처 기업이 흔들리는 것은 무엇보다 경쟁력의 원천이 되는 기존 고객 층이 얇은 데 따른 후폭풍이다. 날리지큐브와 온더아이티가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고객과의 스킨십을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날리지큐브는 매년 사용자 콘퍼런스를 통해 기존 고객의 만족도 향상을 점검한다. 이 행사에서 날리지큐브는 KMS 신기술 동향은 물론이고 자사 솔루션의 향후 비전을 고객과 함께 고민한다. 특히 고객과의 의사소통을 위해 자사의 KMS에 GCOP를 마련해 고객과 KMS를 통한 지속적인 교류와 제품에 대한 피드백을 진행하고 있다.
온더아이티 역시 지난 2003년부터 고객과의 접점을 넓히기 위해 사용자 콘퍼런스를 개최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고객사의 애로사항을 직접 듣고 이슈에 대한 해결 방안을 강구해 이를 차기 개발 방향에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제품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가자는 뜻에서다.
◇‘고인 물은 썩는다’=양사는 현재 KMS 제품을 공급하는 데 만족하고 있지 않다. 지금의 아이템만으로 머물다가는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또 다른 경쟁 무기를 만드는 데 여념이 없다.
온더아이티는 이달 말 KMS를 기반으로 한 업무프로세스관리(BPM) 솔루션인 ‘K-BPM’을 출시한다. 이 제품은 지금의 KMS/EKP가 지식 산출물을 시스템 내에 분류해 저장하는 부분에만 관심이 있을 뿐 활용 극대화 측면에 대한 제시가 부족하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축적된 노하우와 지식을 자동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KMS/EKP/BPM 통합 솔루션이 가장 적합한 설명이 될 듯하다.
날리지큐브도 최근 핸디소프트와 KMS 부문에서 공공 개발 및 판매에 나서는 등 큰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무엇보다 KMS에 주력하면서도 핸디소프트와 BPM 통합 작업까지 계획하고 있어 고객에게 최적의 협업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제품 강화에 매진할 계획이다. 또 올해부터는 KMS뿐만 아니라 기업포털 시장과 통합검색 시장의 성공적 진입을 노리고 있어 결과가 주목된다.
◆경영 철학
엔지니어 출신 CEO의 기업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편견을 깨고 이들 기업은 아직까지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들 기업이 이만한 성장을 거둔 것은 양사 CEO들이 창업 초기부터 경영 철학을 지켜온 덕분이다.
김학훈 날리지큐브 사장의 경영 철학은 ‘정직’이다. 이 원칙은 기업과 기업의 경쟁, 기업 내 조직 관리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김 사장 자신도 무엇보다 CEO의 정직에 무게를 두고 있다. CEO의 철학이 조직 전체를 지배한다는 판단에서다. 김 사장은 특히 평소에 시간만 나면 ‘회사의 자산은 직원’이라고 얘기할 정도로 직원 개개인의 능력을 키우는 데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김범수 온더아이티 사장도 ‘경영은 사람 관리’라고 할 정도로 직원에 대한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사람의 가치에 중점을 두고 직원과 고객에게 신뢰를 제공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겠다는 각오에서 나온 경영 철학이다. 김 사장은 인간 중심의 경영이란 측면에서 분기별로 생활 모토를 정하고 지키도록 한다. 예를 들어 1분기 생활 모토는 ‘위기를 극복하자’였고 2분기 생활 모토는 ‘스마트 운동’이다. ‘고객의 마음 속에 호감을 심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자’는 슬로건 하에 스마트한 조직을 만들겠다는 취지다.
◆시장 경쟁
날리지큐브와 온더아이티가 시장에서 일대일로 맞붙은 것은 지난해부터다.
수십 개의 업체가 난립할 때만 해도 둘만이 맞서는 경우는 많지 않았지만 업계가 정리되면서 이제는 웬만한 프로젝트에서 양사는 꼭 만난다. 물론 날리지큐브는 주력이 자바 기반이라는 점에서, 온더아이티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닷넷 기반이라는 점에서 고객 요구에 따라 가끔은 ‘숨돌리기’를 하지만 긴장을 풀 여유는 없다.
재미있는 것은 앞으로는 중견중소기업(SMB) 시장에서 제2라운드를 펼쳐야 한다는 점이다. 양사 모두 기존 제품을 중소기업에 맞게 재개발해 중소기업용 제품을 내놓을 계획이다.
날리지큐브는 국내 SMB 시장에 맞는 패키지 제품을 상반기에 내놓고 하반기에 대기업 계열사를 중심으로 시장 공략에 나설 예정이다. 온더아이티 역시 100인 이하 중소기업의 핵심 역량과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중소기업용 패키지를 상반기 안에 내놓기로 했다. 우선 연말까지 10개의 고객사를 확보한다는 것이 이 회사의 목표다.
다행스러운 일은 양사 모두 올해부터 본격적인 해외 진출에 나서겠다고 벼르고 있다는 것이다. 날리지큐브는 올해 일본, 중국, 동남아 등에 진출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온더아이티도 내년을 일본, 중국 등 해외 진출의 원년으로 삼기로 하고 올해부터 준비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제 좁은 국내 시장에서의 경쟁보다는 해외에서 글로벌 업체와의 경쟁 속에서 토종 기업으로서의 자존심을 누가 먼저 보여줄 것인지를 지켜보는 것도 관전의 재미다.
이병희기자@전자신문, shak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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