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 융합은 전세계적인 추세다. 우리나라는 초고속인터넷과 휴대전화를 통해 융합 현상이 급속도로 진전되고 있다. 기술이 급속하게 발전하면서 방·통 시장 구조가 빠르게 개편되고 있다. 융합과 관련된 시장 규모도 엄청나게 확대되고 있다.
방송사의 인터넷방송국을 통해 TV 프로그램을 실시간으로 어디서나 보고, SK텔레콤의 ‘준(June)’이나 KTF의 ‘핌(Fimm)’ 서비스를 통해서도 시청할 수 있다. 케이블망을 이용해 TV뿐 아니라 인터넷과 전화(VoIP)도 제공된다. 이제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을 통해서도 언제 어디서나 방송을 시청할 수 있는 시대가 전개되고 있다.
방·통 융합은 우리 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사회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단지 방·통 융합형 서비스 매출액만으로 평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각종 단말기와 콘텐츠, 그 파급 효과까지 감안한다면 수조원에 달하므로 방·통 융합시대에 바람직한 정책은 기존의 규제방안과는 달라야 한다.
첫째, 소비자를 최우선으로 하는 정책이어야 한다.
방·통 융합시대의 규제정책은 소비자 후생 극대화를 최우선시해야 한다. 산업 육성을 앞세운 공급자 위주 정책으로는 안 된다. ‘새로운 기술투자를 위해 공급자가 충분한 자금 여력을 갖추어야 하고 이를 위해 소비자나 국민의 권리가 다소 희생되어도 된다’는 정책 방향은 바람직하지 않다. 유효경쟁 정책은 소비자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기존 사업자의 이익을 보장해 주기 위한 제도라 할 것이다. 최근 공정위에서 시내전화 사업자 간 담합에 대해 1000억원대 과징금을 부과한 것만 보더라도 이를 잘 이해할 수 있다.
둘째, 공정경쟁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방·통 융합시대에는 많은 공급자가 출현해 소비자의 선택권을 보장해 주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 경쟁력있는 사업자만이 시장에 진입해 생존할 수 있도록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지금처럼 규제기관이 진입을 통제하고 요금 규제를 통해 사업자 간 수익을 배분하는 방안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나라 초고속인터넷이 초창기부터 치열한 경쟁을 통해 세계 1위 위상을 지키고 있는 것을 봐도 공정한 경쟁은 방·통 융합시대에 필수적이다. 공정경쟁을 보장하려면 정책 수립 과정이 투명해야 하고, 각종 이해관계에 얽히지 않는 중립적인 입장에서 경쟁촉진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셋째, 방송과 통신이 융합되는 정책이어야 한다.
이달 중순에 열렸던 서울디지털포럼에서 마이클 파월 전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 위원장은 방·통 융합시대에는 규제제도 혁신이 필요함을 역설한 바 있다. 또 바람직한 규제기구는 방송통신위원회 체제고, 행정부로부터 독립된 독립규제위원회라고 밝혔다. 위원의 수는 5명 정도가 적정하며 이는 급변하는 방·통 융합시대에 신속하게 대처키 위해서라고 했다. 미래를 준비하고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를 통합해 하나의 독립규제위원회 체제를 갖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미 우리는 방·통 융합시대에 살고 있으므로 규제기구도 방·통 융합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모습을 갖춰야 하는 것이다.
넷째, 방·통 전 분야의 사회문화와 산업경제를 총괄하는 거시적 국가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이와 함께 방·통 융합시대에도 방송의 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돼야 한다.
우리나라 방송위원회는 미국의 FCC와 같이 가장 선진화된 제도다. 방·통 융합 논의 과정에서도 이러한 정신을 이어갈 수 있도록 유념해야 한다. 지난 1999년 방송개혁을 다루기 위해 방송개혁위원회가 대통령 직속기구로 설치된 바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방·통 구조 개편이 방송과 통신 산업 전반의 국가경쟁력을 제고하고 10년 앞을 내다보는 성장력을 갖기 위해서는 대통령 직속기구로 설치해 강한 드라이브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끝으로 구조 개편 논의에는 다음 세 가지 원칙이 필요하다. 첫째 경쟁 도입을 통한 소비자 주권 강화, 둘째 산업 육성을 주도할 수 있는 체제 구축, 셋째 정부에서 인위적으로 시장을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 의해 공정경쟁이 유지되는 체제여야 한다. 하루빨리 방송통신구조개편위원회가 출범하여 미래를 준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춘식 방송위 방송정책실장 choonkim@kbc.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