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게임산업을 키우고, 이끄는 최고경영자(CEO)들의 ‘시장을 보는 눈’은 어디에 맞춰져 있을까. 성장기 10년을 지나, 100년의 도약을 꿈꾸는 한국 게임산업이 현재 처해있는 좌표와 나아갈 길이 이들의 시선속에 녹아있다. 주요 업체 CEO 20명의 상황인식 속내를 들여다 봤다.
한국 게임산업의 세계 경쟁력을 ‘수우미양가’ 방식으로 따져보면 ‘미’에서 ‘우’에 걸쳐있는 정도로 평가됐다. 응답CEO 21명중 52%인 11명이 한국 게임산업의 경쟁력을 70∼80점 대로 평가했다.
70점 이하 점수까지 모두 포함하면 대다수 CEO들은 한국 게임산업이 지난 10년간 큰 폭의 성장 걸음을 걸어온 긍정적인 면을 어느정도 인정하면서도 이를 객관화시킨 점수에선 아주 인색했다.
이는 한국 게임산업이 세계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여전히 5%대 내외란 현실과도 일맥상통한다. 지극히 편중화된 플랫폼 기반이 한국 게임산업의 디스카운트 요인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낙제점이 거의 없고, 그렇다고 최고 점수도 안나온 점은 ‘성적 향상’에 대한 기대감 또한 뚜렷히 자리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온라인게임은 이미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고, 이 분야 세계시장의 ‘파이’가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눈에 띄는 대목은 중후발 10개 기업의 CEO들중 한국 게임산업의 경쟁력 점수를 50∼70점대로 매긴 응답이 4개나 나온데 반해, 선발대형업체는 CEO 2명은 80∼90점대라고 응답해 대조를 보인 점이다.
정부가 오는 2010년 세계 3대 게임강국 진입을 정책 목표로 제시하고 있지만, 업계 CEO들의 시각은 좀 더 현실에 바탕하고 있는 것으로 나왔다. 응답자의 절반에 가까운 9명이 만 10년 뒤인 2015년, 한국 게임산업이 세계 5강권에 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3강에 들어 갈 것이란 응답과 10강을 차지할 것이란 응답이 각각 5명, 6명으로 비슷한 수준을 기록했다. 대체적으로 게임업계 CEO들은 향후 10년간 한국이 세계 10위권 내에 진입할 것이란 자신감에 공감하고 있는 분위기다. 여기서도 선·후발업체간 시각차가 뚜렷이 나타났다.
선발대형업체 CEO 11명중 5명이 3강 진입을 꼽아 가장 많은 비중을 기록한 반면, 후발업체는 5강 진입이 6명, 10강이 3명으로 3강 진입 자신감이 상대적으로 많이 떨어졌다.
지난 10년의 한국게임산업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성과로는 무엇이 꼽혔을까. 응답 CEO 21명중 76%인 16명이 ‘온라인게임 시도 및 성공’이라고 대답했다. 격차는 많이 났지만 ‘중국 등 동남아시장 선점’이라고 응답한 사람이 3명으로 뒤를 이었다.
표현은 다르지만 온라인게임 성공과 중국·동남아시장 선점은 한 뿌리에서 나온 내용적으로 같은 대답이다. 온라인게임이라는 세계적인 첫 시도와 그 성공 가능성의 확인은 한국 게임산업이 거둔 커다란 성과가 분명하다.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충실하라’라는 주문이 여전히 한국게임산업에 통할 수 있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사실 한국게임산업의 미래를 결정짓는 가장 핵심적인 선택은 ‘온라인게임 강점의 무기화’와 ‘온라인 플랫폼 편중’이라는 동전의 양면 같은 두가지 조건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풀어내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임 전문가들은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한 선도업체들이 세계적인 온라인게임 흐름을 지배해 나가고 시장 선도력을 유지하는 동시에, 온라인게임을 다양한 플랫폼으로 이식·전파하는 노력을 병행해야한다”고 입을 모은다.
CEO들도 플랫폼 다변화에 대한 필요성과 시장 요구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한국게임산업의 중장기 성장을 떠받칠 가장 중요한 과제로 ‘플랫폼 다변화를 통한 해외시장 다각화(11명, 55%)’를 꼽았다.
강점을 가진 온라인게임분야로의 역량 집중(4명,20%), 국내시장 구조조정을 통한 선택과 집중 강화(3명, 15%)란 응답이 뒤를 이었다.
플랫폼 다변화에 대한 요구는 대형업체나 중후발업체 CEO들이 모두 안고 있는 공통 과제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력 확대가 공염불로 끝나지 않으려면 플랫폼 다변화에 대한 청사진이 하루빨리 나와야한다는 지적이다.
CEO들이 자신이 이끌고 있는 회사를 한국 게임산업 성장의 주역으로 만들기 위해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일로는 43%인 9명이 ‘우수 인력확보’라고 응답해 가장 많았다. 비슷한 비중으로 ‘해외진출 국가 및 매출 확대(7명,35%)’가 뒤를 이었다. 역시 향후 10년간 한국 게임산업의 운명을 결정지을 핵심 키워드가 인력과 해외임을 확인해준 것이다. 선발대형업체 CEO들은 여전히 인력에 깊은 관심을 쏟은 반면, 후발업체는 해외를 통한 매출 확대가 더 큰 관심사라고 응답했다. 이진호기자@전자신문, jholee@etnews.co.kr
◆설문에 나타난 특징
선발 대형업체 CEO들은 이미 이룩한 성과 만큼이나 미래에 대한 자신감이 흘러넘쳤다.
엔씨소프트, 넥슨, 그라비티, 웹젠, 한빛소프트 등 5대 게임업체와 NHN, 네오위즈, CJ인터넷 등 3대 게임포털이 모두 포진한 선발업체군에선 한국이 오는 2015년 세계 3강에 들것이란 응답이 5명이나 나왔다. 반면 중후발업체 CEO 10명중 3강에 들것으로 전망한 사람은 단 1명에 불과했다.
세계 온라인게임시장 1위 업체인 엔씨소프트를 비롯해 나스닥 업체인 그라비티, 웹젠 등 이미 글로벌 수준에 올라선 기업들인 만큼 이들에게 ‘세계 3강’은 그야말로 시간문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셈이다.
응답한 21명의 CEO중 현재 한국 게임산업의 세계경쟁력을 50점 이하의 낙제점으로 평가한 응답도 1개가 나와 단연 눈길을 끌었다.
이 응답자가 한국 게임산업에 낙제점을 준 이유로 꼽은 것은 체계적인 산업 성숙보다 IT인프라 급성장에 의존한 ‘부가적 태생’ 문제다. 물론 이것은 이제 게임을 게임 자체로 발전시키고, 한국만의 경쟁력을 가진 산업으로 키워가야한다는 자성의 소리이기도 하다.
소수의견으로 또 하나 주목을 끈 것은 한국 게임산업이 중장기적으로 성장을 거듭하려면 ‘해외 유수기업과의 M&A가 필요하다’는 1건의 응답이다. 국내 선두권 대형업체들 간의 결합은 현실적으로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하지만, 개발력 보강과 해외시장에서의 브랜드 인지도 확보를 위한 국외 M&A는 국내보다는 훨씬 큰 가능성으로 열려있는 상황이다. 다만 이것이 자체 성장력을 저해하는 패착으로 이어지는 것은 경계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5개항의 질문중 가장 높은 응답비율을 얻어낸 것은 10년 역사의 가장 빛나는 성과가 ‘온라인게임 시도 및 성공’이라는 대답이다. 21명의 CEO중 16명이 이를 꼽았다. 온라인게임이 한국 게임산업의 대표 상품이자, 세계시장을 개척할 희망의 등대임을 재확인해준 결과다.
이진호기자@전자신문, jholee@
◆설문에 응한 CEO
김광열(이온소프트), 김남주(웹젠), 김영만(한빛소프트), 김정률(그라비티), 김택진(엔씨소프트), 김화수(엔도어즈), 나성균(네오위즈), 박관호(위메이드엔터테인먼트), 박영수(엠게임), 서원일(넥슨), 윤석호(CCR), 윤선학(인디21), 윤영석(써니YNK), 이원술(손노리), 이한창(윈디소프트), 정영종(CJ인터넷), 정영희(소프트맥스), 조성용(조이온), 최휘영(NHN), 한상은(나코인터랙티브), 황선하(나온테크) (가나다 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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