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관중이 지은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의 도원결의(桃園結義) 장면을 떠올려 보자.
때는 바야흐로 후한 말. 황제를 보필하는 환관의 농간으로 나라꼴이 우스워지던 때다. 유주(幽州) 탁현 누상촌에 살던 유비는 장비와 관우를 만나 의형제를 맺는다. 도원결의를 통해 이들의 ‘야망’은 ‘대망’으로 바뀐다.
셋은 ‘한 해 한 달 한날에 죽기를 원하니… 만일 우리 중에 의리를 배반하고 은혜를 잊는 자가 있다면 함께 죽여 주소서’라고 피로써 맹세한다. 나이 순서대로 유비, 관우, 장비 순으로 의형제가 됐다.
노무현 대통령의 도원결의도 유명하다. 2001년 11월경 대권 경선에 뛰어든 노 후보는 경기도 안산에 있는 골프장에서 당시 이해찬 의원, 유인태 의원, 원혜영 부천시장과 골프 모임을 가졌다. 이 모임 이후 스스로 ‘바보’라고 칭하며 계파가 없던 노 대통령은 경선 혁명을 일으키며 대망을 이룬다. 이날 노 대통령은 89타를 쳤다고 한다. 노 후보(46년생), 유 의원(48년생), 원 시장(51년생), 이 의원(52년생) 순으로 의형제 서열이 결정나지 않았을까.
우리 기업들도 자주 도원결의를 한다. 표준안과 관련해 전략적 제휴를 체결하고 글로벌 협력방안 도출, 공동 법인 출자 등 다양한 도원결의를 하고 있다. 장소는 ‘복숭아꽃 날리는’ 정원이 아니라 대부분 호텔이나 기업의 대회의실이다. 현수막을 내걸고 CEO들이 나와 악수를 하거나 ‘어느 사업에서 어느 정도 협력하자’고 쓰인 서류에 사인하면 끝이다. ‘우리 중 의리를 배반하는 자가 있다면 함께 죽여 달라’는 맹세도 없다. 누가 형인지 동생인지도 잘 모른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상생의 협력관계라고 수십 번 강조해도 비장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너무 식상하고 진부한 맹세가 됐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시대의 도원결의는 이처럼 시시하다.
경기도 성남에는 ‘도원결의’라는 이름의 음식점이 있다. 찾아오는 손님 모두 유비, 관우, 장비가 되라는 주인장의 마음 씀씀이가 애틋하다. 그러나 음식점 손님이 모두 삼국지 주인공일 수는 없다. 그렇게 믿기에는 우리가 너무 변했다.
디지털산업부·김상룡 차장@전자신문, srkim@etnews.co.kr